與, 부유층ㆍ서민 분리전략 구사
‘노블리스 오블리주’ 당위성 강조
한국당 “무대책 포퓰리즘” 공세
바른정당도 “국민 호도” 비판
국민의당은 일단 관망 분위기
여론은 ‘증세 찬성’ 압도적 우세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초대기업 및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름짓기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여권은 ‘핀셋 증세’에서부터 ‘명예ㆍ사랑 과세’라는 명칭까지 부여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세금 폭탄’ 등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증세액 자체는 4조원에 못 미치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여권은 조세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데 주력하는 반면 야권은 조세 저항감을 부추기기 위해 프레임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여권은 이번 증세가 서민과 무관하다는 점을 집중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처음으로 증세를 언급했을 때부터 핀셋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대기업과 5억원 이상 고소득자에게만 정밀하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담배세 인상 당시와 같은 국민적 반발을 막기 위해 부유층과 서민 분리 방침을 명확히 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증세 대상 대기업이 전체 기업의 0.019%, 개인의 경우 국민 전체의 0.08%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며, ‘슈퍼리치(10억원 이상 금융자산을 가진 부유층) 증세’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민주당의 여론전은 24일 ‘명예ㆍ사랑 과세’라는 프레임으로까지 확장됐다. 추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증세를 초 대기업과 초 고소득자 스스로 명예를 지키는 명예 과세라 부르고 싶다”고 말했고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부자들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존경 과세’이자 대기업들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랑 과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세라는 단어를 통해 거부감을 희석시키려는 동시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까지 강조하며 증세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법인세 인상 등을 반대했던 한국당은 또 다시 세금 폭탄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한국당은 참여 정부 당시 같은 프레임을 통해 종합부동산세 여론전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가공할 세금 폭탄 정책이 현재는 초고소득자에 한정되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연장될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며 “무대책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여권의 다양한 프레임 설정에 맞서 “핀셋 증세라며 초대기업에 세금을 많이 물리는 것은 징벌적 증세”(김태흠 최고위원), “오히려 대기업이 해외로 탈출하는 ‘엑소더스'가 일어날 것”(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바른정당도 프레임 전쟁에 가세했다. 이혜훈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발표 때만 하더라도 증세는 제로였는데 여당 대표 등을 동원해 건의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정부가 재원조달을 위한 전면적인 세제개편안을 밝힌다면 논의에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당은 일단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 지지도가 높으면 국민은 세금도 더 내야 하냐”고 비판했지만, 이날 의원총회에선 당론 결정 없이 증세 관련 여야 태스크포스 구성 방식 등에 대한 논의만 진행했다.
증세에 대한 여론은 여권에 우호적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21일 전국 성인남녀 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의 85.6%가 초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에 찬성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