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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울었다…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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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울었다…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별세

입력
2017.07.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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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안부 피해자 37명뿐

故 김군자 할머니(왼쪽)가 지난 10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故 김군자 할머니(왼쪽)가 지난 10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 8시4분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나눔의 집에 따르면, 강원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지내다 16세 때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다. 탈출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진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로 들을 수 없었다.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며 7차례나 자살을 기도할 만큼 위안소 생활은 처참했다.

전쟁이 끝난 뒤 김 할머니는 함경북도 성진까지 걸어가 두만강을 넘어 귀국했다. 당시 함께 강을 넘던 친구 1명은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다시 만났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홀로 살던 할머니는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입소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강제동원 실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 주최로 미국 의회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 참석해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명을 상대하며 성노리개가 돼야 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아 고막이 터졌다”고 증언했다. 또한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생활안정지원금 등을 모아 아름다운 재단에 1억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퇴촌 성당에 학생들 장학금으로 1억5,000만원 등을 기부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생전 소원은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지급된 위로금 1억원은 받지 않았다. 지난 10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당시 김 할머니는 정 장관의 손을 잡고 “명예를 꼭 회복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김 할머니가 공식석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이셨던 김군자 할머니, 이제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평안하십시오”라고 명복을 빌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직접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10년 넘게 나눔의 집을 방문하며 할머니들의 안부를 챙겼다는 배우 유지태 역시 이날 빈소를 찾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故(고)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하늘도 슬픈 듯 종일 비를 내리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김군자 할머니.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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