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성 없어 실효성엔 의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가 지적 공동체인 카이스트 대학원 내에서도 변함없이 유효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2014년 10월 6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관 앞, 강성모 당시 총장과 대학원생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언식’이 열렸다. 교수를 정점으로 하는 일방적인 절대권력에 초라해져만 가는 인권을 스스로 찾겠다는 호소와 선언. 국내 첫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대학원생들의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도입하는 학교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일 노웅래 의원실에 따르면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까지 2년간 권리장전이 만들어진 곳은 총 61곳. 올해 들어서도 서강대가 지난달 선포했고, 이화여대는 김혜숙 총장이 당선되면서 학생인권센터 설립과 함께 권리장전 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대학원생과 교수 간 갈등으로 인해 빚어진 ‘텀블러 폭탄 사건’이 벌어졌던 연세대도 권리장전 테스크포스(TF)를 만든 상태다.
권리장전에는 부당한 권력관계 속에서 그 동안 무시돼 온 대학원생들 권리가 조목조목 열거된다.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부당한 일을 거부할 권리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을 권리 등이다. 서울대는 대학원생들을 위한 표준 근로계약서를 만들어 노동자로서 가질 권리를 보호하고자 했으며, 카이스트는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권리구제기구 설치를 명시하고 있다. 학생들 권리뿐 아니라 연구윤리 등 의무 사항을 명시한 곳도 있다.
권리장전 증가는 교수들에 의한 대학원생 인권침해 사례가 잇달아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대학원이 설치된 182개 대학 총장에게 권리장전 도입과 인권전담기구를 설치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 인권위는 전국 대학원생 1,906명을 대상으로 설문해, 10명 중 1명꼴로 ‘폭언이나 욕설을 들었다’는 응답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권리장전 무용론도 일부 나온다.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이 아닌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과 압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