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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빨강에 대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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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빨강에 대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니

입력
2017.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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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부셰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마담 드 퐁파두르' 1750년 작, 캔버스에 유화. 18세기 프랑스에서 붉은 색 루주는 구애와 계급의 표식이었다. 하버드대학 제공.
프랑수아 부셰 '잔 앙투아네트 푸아송, 마담 드 퐁파두르' 1750년 작, 캔버스에 유화. 18세기 프랑스에서 붉은 색 루주는 구애와 계급의 표식이었다. 하버드대학 제공.

빨강의 문화사

스파이크 버클로 지음ㆍ이영기 옮김

컬처룩 발행ㆍ448쪽ㆍ2만2,000원

영화제에서 빠지면 섭섭한 ‘레드 카펫’은 유명 인사를 환영할 때 반드시 필요했던, 천년 이상 된 관습이다. 붉은 천은 옛날부터 비싼 가격에 거래됐고, 공휴일이나 일요일을 뜻하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빨간 날’이다. 전 세계 모든 국기의 80%는 빨간색이 들어있다. 색깔마다 각각의 역할이 있고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지만, 빨강의 파급력은 다른 색에 비해 훨씬 강력하다. 이유가 뭘까.

빨강에 관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같은 책이다. 예술사 박사 출신의, 회화 복원 전문가인 저자는 신화, 종교, 과학,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미술 등 다방면에 걸쳐 빨강의 근원, 이용과 상징의 역사를 펼친다.

저자는 빨강의 가치는 “빨간색 화장품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피는 것만으로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루주는 기원전 몇 천 년 전부터 이라크 이집트 지역에서 사용됐는데, 화장용 빨간 파우더가 고대 수메르 도시 우르의 왕족 묘에서 발견됐다. 고대 로마 여성들은 백색 안료, 진흙으로 만든 하얀색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고 루주를 덧칠했다. 튜터 왕가의 군주였던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가문의 상징인 ‘튜터 로즈(빨간 장미와 흰 장미를 짜 맞춘 무늬)’를 활용해 빨간색을 정치에 이용했다. 나이가 들면서 젊은 시절의 불타는 빨간색 머리카락을 잃게 되자 빨간색으로 염색을 하다 나중에는 빨간 가발을 쓰는 식으로 말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루주는 구애의 표시이자 계급의 표식이었다. 밝은 빨강일수록 ‘귀족적인 것’을 나타냈고, 베르사유 궁전을 드나들 수 있는 신분증과 같았다.

인류가 찾아낸 빨간 염료의 원천은 빨간색을 띤, 진드기류의 벌레였다. 그중에서도 질 좋은 빨강을 제공하는 코치닐은 최상의 대접을 받아, 코치닐을 십일조나 지대로 납부했다는 9세기의 기록이 남아있다. 신대륙에서 코치닐이 싼값에 유럽에 공급되면서 코치닐은 신·구대륙 주요 교역품으로 떠올라 국제무역 질서까지 바꿨다. 19세기 염료가 인공적으로 합성되기 시작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콜타르에서 추출한 아닐린을 원료로 빨간 염료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합성염료산업은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신산업이자 ‘화학 혁명’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역사적으로 빨강은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색이었다. 이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실과 귀족이 선호했다. 그리스도의 피는 서양 역사에서 빨강에 ‘신성함’이라는 종교적 의미까지 새겨 넣었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 볼셰비키와 중국 공산당 등이 붉은색을 상징으로 쓰면서, 오늘날 붉은 깃발은 흔히 공산주의, 좌파, 혁명, 노동자를 상징하게 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빨강이 특별하게 취급된 이유는 무얼까. 흔히 빨강이 특별한 것은 피가 빨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추론을 뒤집는다. 피가 빨갛기 때문에 빨강이 특별해진 것이 아니라, 빨강이 특별한색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여러 체액 중에서 유독 피가 주목을 받게 됐다는 주장이다.

‘오직 이야기’라는 단 하나의 주제로 묶인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오직 빨강’을 주제로 뭉친 50여 가지 문화사는 책의 어떤 페이지를 펼쳐 읽기 시작해도 무방할 만큼 자유로운 독서를 선사한다. 한데 이 많은 ‘쓸데없는 잡학’들을, 우리는 어디서 누구와 나눠야할까.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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