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자리 단골 안주인 야구. 요즘은 온통 이승엽 얘기다. 팬들도 매스컴도,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프로야구 삼성의 ‘국민타자’ 이승엽 ‘찬양’ 일색이다. 맞는 말이다. 그만한 실력에 그만한 인성을 갖춘 선수는 보기 드물다. 이승엽은 은퇴 시즌에도 팀 내 최다 홈런을 치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는, 한국 야구 역대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극적인 효과가 조성된 셈이다.
이승엽을 빼고 한국 야구사를 논할 수 없다. 1995년 프로에 데뷔해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시기(2004~2011년)를 제외하곤 KBO리그에서 삼성 유니폼만 입고 올 시즌 현재 15시즌 동안 1,854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3리, 459홈런, 1,466타점의 독보적인 성적을 남겼다. KBO리그 통산 최다홈런 1위를 비롯해 홈런왕 5회,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2003년 56개)을 작성하며 홈런의 역사를 새로 썼다. 특히 국제 무대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 3ㆍ4위전에서 8회 2타점 결승 2루타를,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홈런을 때렸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 준결승에서도 8회 결승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그런 이승엽에게도 고비가 있었다. 8년 간의 일본프로야구 생활을 마치고 삼성으로 돌아온 2년째인 2013년 그는 타율 2할5푼3리로 부진했다. 나이 많은 선수에 대한 선입견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우리는 조금의 빈틈을 보이면 또 가차 없이 비판을 한다. 천하의 이승엽에게도 그 때 부정적 여론이 슬슬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당시 류중일 삼성 감독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했다. “이승엽의 은퇴는 본인만 결정할 수 있다.“ 선수 기용의 고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노 터치’를 선언하자 이후 이승엽의 은퇴는 금기어처럼 됐다. 그러고 벤치에만 둔다면 의미가 없다. 류 감독의 그 말은 이승엽이 은퇴를 하기 전까지 베테랑에 대한 예우를 염두에 둔 것이며 최소한 편견 없이 기용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승엽은 이듬해 부활에 성공했고, 마지막을 맞은 올 시즌까지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4년엔 이승엽의 홈런에 투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눈을 번쩍 떴다는 일화까지 보도자료로 내보낼 정도로 삼성 그룹에서 이승엽을 거의 ‘신격화’하는 분위기였고, 그렇게 이승엽 본인만 결정할 수 있게 된 은퇴는 유종의 미를 앞두고 있다.
이승엽의 나이는 올해로 마흔 둘이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30대만 넘으면 노장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다르다. 특히 축구나 농구 등 다른 구기 종목과 달리 체력 소모가 덜한 야구에선 30대에 만개한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얼마 전 은퇴식을 치른 LG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병규는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 야구의 대스타지만 이승엽과 정반대의 길에 내몰려 유니폼을 벗었다. 감독은 세대교체라는 칼을 빼 들었고, LG 구단은 감독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명분으로 이병규를 외면했다.
지난해 은퇴한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의 ‘전설’ 야마모토 마사는 무려 쉰 살의 나이까지 공을 던졌다. 코칭스태프로도 중년에 접어들 나이까지 야마모토가 선수로 뛰는 원동력은 꾸준한 자기 관리가 첫 번째이지만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를 예우하는 일본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야마모토는 은퇴 시점에 대해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주니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팀 내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도 크다. 팬들에게는 그런 대선수를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병규는 은퇴식에서 “이 시대의 지친 40대 가장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야구팬들은 이정후(넥센) 같은 18세 루키도 환영하지만 마흔 다섯 현역 선수도 보고 싶어한다.
이승엽이 올해 부진했더라도 우리는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며, 그 동안 고마웠고 수고했다고 박수칠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박수칠 때 떠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아량도 필요하지 않을까.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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