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 군사ㆍ적십자 회담 제의에 미국 정부가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들을 명확히 해 왔고, 이 조건들은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와는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회담 제의가 대화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도 “한국 정부에서 나온 말들이니 한국에 물어보라”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반대도 노골적이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성 장관은 “이달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지금은 압력을 가할 때라는 점을 확인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금 국제사회의 대북 기조는 강력한 압박과 제재다. 이달 초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대화 분위기는 실종된 상태다. 미국은 중국 단둥은행에 대해 미국과 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제재를 취한 데 이어 의회에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 10곳을 명시해 국제금융망에서 퇴출시키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대북 압박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제3국 기업과 기관을 포괄적으로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도 곧 가동할 태세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와 교류를 강조한 베를린 선언을 주창하면서도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최대한의 압박’에 합의하는 성명을 낸 것은 국제사회의 기조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한미일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정부가 이런 기조를 훼손하는 것처럼 비춰진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하고 확인했듯 대화는 국제공조의 틀 내에서 이뤄져야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문 대통령의 심정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으나 우리 정부 스스로가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미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대화의 조건으로 합의한 ‘올바른 여건’이 그동안 얼마나 충족됐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남북문제에서 주도권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역할을 존중한다는 것이지 국제공조를 흔들면서까지 북한에 접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한반도 운전자론’이 성립하려면 조수석에 미국과 중국, 일본을 태우고 함께 가야 한다. 국제사회가 이탈해 다른 차를 타고 가야 할 상황이라면 헛된 말장난으로 끝날 뿐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 제의의 취지를 국제사회에 충분히 설명해 공조의 틈새를 빈틈없이 메워야 하는 한편 혹시라도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게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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