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 갑질’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13일 이장한(65) 종근당 회장이 운전기사를 상대로 폭언을 일삼았다는 주장과 함께 이 회장의 음성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녹취록에는 이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적나라한 욕설, 외모 비하 등 문제성 발언을 일삼은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4일 이 회장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종근당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의 행동을 상처를 받으신 분께 용서를 구한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 사건에 대한 내사에 정식 착수했고, 이 회장을 향한 시민들의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 총수가 일명 ‘갑질’ 로 국민에게 고개 숙인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이제 익숙한 광경이 돼버렸다. 이 같은 갑질 사건은 ▦ 피해자의 ‘갑질’ 사건 폭로 ▦ 해당 기업을 향한 여론의 질타 ▦ 대국민 사과 라는 고정된 형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갑질’의 바탕에는 ‘특권의식’이 깔려있다(관련기사). 그동안 발생한 ‘오너 갑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살펴본다.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기업 오너의 ‘운전기사 폭행’
최근 2년간 드러난 기업 총수들의 ‘운전기사 폭언ㆍ폭행 사건’은 종근당 사건을 비롯해 총 4건이다. 지난해 3월 이해욱(49) 대림산업 부회장은 운전기사 이모씨에게 상습적으로 “운전을 제대로 못 한다”며 욕설과 함께 폭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이 부회장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공식으로 사과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은 이 부회장에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같은해 4월에는 정일선(47) 현대BNG스틸 사장의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이 논란을 빚었다. A4용지 140쪽가량의 ‘갑질 매뉴얼’에는 ‘정 사장의 운동복 세탁 방법’과 ‘운동 후 봐야 하는 신문 위치’ 등 상세한 업무 지시가 적혀있었다. 운전기사들은 해당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감봉조치를 당하고, 정 사장에게 모욕적인 언행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졌다. 이후 고용노동부의 조사로 정 사장이 3년 동안 61명의 운전기사에게 주 56시간 넘게 일하게 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 된 정 사장에게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2015년 9월 사회적 파문을 낳은 김만식(78)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사건은 이번 종근당 사건과 닮았다.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을 일삼은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고, 폭언과 함께 신체 폭행이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유사한 부분이 있다. 김만식 전 명예회장은 운전기사로 일했던 A씨에게 입사 첫날부터 욕설을 퍼붓고, 신체 주요 부위를 걷어찬 사실이 밝혀져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몽고식품 불매 운동이 퍼지기도 했다. 결국 김만식 전 명예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사과를 한 뒤 사퇴했다. 지난해 4월, 김만식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은 벌금 700만 원으로 약식기소 됐다.
‘경비원 폭행’부터 한 대에 100만원 ‘맷값 폭행’까지
지난 6일 ‘가맹점 갑질 논란’으로 구속된 정우현(69) 전 MP 그룹 회장은 ‘경비원 폭행 사건’으로 한 차례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지난해 4월 정 전 회장은 서울 서대문구 한 상가에서 자신이 나가기 전에 문을 닫았다는 이유로 해당 건물에 근무하는 경비원 황 씨에게 화를 냈다. 곧이어 정 전 회장은 사죄하는 경비원의 목과 턱을 사이를 두 차례 때렸고, 이 장면이 CCTV에 담겼다. 3일 후인 4월 9일 정 전 회장은 서울 서대문경찰서로 조사를 받기 전 취재진을 앞에서 “성숙하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며 사과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8월 정 전 회장에게 상해죄를 적용해, 벌금 2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최철원(48)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사건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 중 하나다. 2010년 최 전 대표는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화물운전기사를 회사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와 주먹으로 폭행해 구속됐다. 최 전 대표는 기사에게 “한 대당 100만원씩이다. 총 20대를 맞아야 한다”고 말하며 폭행한 뒤 2000만 원의 ‘맷값’을 건넨 것으로 알려져 사회적 질타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최 전 대표에게 1심에서 징역 1년6월, 2심에서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5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에서는 재벌 2세가 1인 시위하는 트럭 운전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폭행하고 돈을 준다는 유사한 설정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비행기도 되돌린 오너 갑질, 대한항공 086편 ‘땅콩회항’ 사건
일명 ‘땅콩 회항’으로 알려진 조현아(43)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갑질 사건은 큰 사회적 파문을 낳았던 사건이다. 2014년 12월 5일, 조현아 전 부사장은 뉴욕발 대한항공 일등석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가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승무원과 박창진 전 사무장을 무릎 꿇린 후 폭언과 폭행을 해 논란을 빚었다. 또한, 항공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서울 서부지법은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1심에서 항로변경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항로변경 혐의는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업무 집행방해 등 다른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13일 언론 보도를 통해 당시 사건의 내부고발자였던 박창진 전 사무장의 근황이 알려져 ‘땅콩 회항’은 다시 화제를 모았다. 박 전 사무장은 언론보도를 통해 지난해 4월, 1년여 만에 복귀한 이후 “경력 21년 차 임에도 신입에 해당하는 승무원 업무를 하고 있다”며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김빛나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제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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