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왕을 바꾸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귀족들의 억압과 부당한 노동착취 속에 자유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대로 자유를 빼앗긴 채 사시겠습니까?”
2014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인기리에 공연된 창작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한 대목이다. 구체제의 억압에 고통 받던 민중들이 분노로 일어서는 모습을 다뤄 공감을 이끌었다. 그러나 정작 공연을 위해 땀 흘린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만성적인 임금 체불에 시달렸다고 호소한다. “뮤지컬을 거쳐간 70여명 중 50여명이 아직 받지 못한 임금을 모두 더하면 최소 6,000만원 상당”이라는 게 출연진들 주장이다.
3년간 50회 이상 해당 공연에 참여한 연출가 김모(46)씨는 “임금 500만원 정도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임금 60%는 공연 전, 잔금 40%는 공연을 마친 뒤 바로 지급하는 게 업계 관행인데, “잔금은 제 때 받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스타급 배우를 제외한 대부분 출연진이 만성적인 임금 체불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참다 못한 레미제라블 출연진 40여명은 지난해 8월 기획사 대표를 노동청에 고소했지만 “공연인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나마 노동청이 “빠른 시일 내에 밀린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대표 각서를 받아줬지만, 여전히 체불 임금 지급은 감감소식. 출연진 일부는 올해 3월부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예술인재단) 도움을 받아 개별 소송에 들어갔다.
임금 체불 등 예술계 불공정 관행은 비단 레미제라블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인재단에 따르면 예술계 불공정행위 신고 건수는 2014년 91건에서 2016년 150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거의 대부분(92%)이 임금 미지급 등 수익배분 갈등이다. 올 들어선 지난달 26일까지 이미 74건이 접수됐다. 특히 연극이 39건으로 절반을 넘었다.
예술인재단의 법률지원을 받아 소송에 나선 이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 정부에 의해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출연진도 상당수다. 예술인복지법 제2조는 예술인 범위를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어, 신인이거나 불경기에 출연 편수가 기준에 못 미칠 경우 예술인재단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들은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 아르바이트나 대리운전까지 하는 처지라 소송 비용이 없다”고 호소한다.
설령 승소해도 임금을 받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2013년 뮤지컬 ‘미스터온조’에 출연했으나 420만원을 받지 못한 뮤지컬 배우 안모(46)씨는 3년 소송 끝에 지난해 6월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기획사 대표는 “아직 돈이 없다”고 지급을 미루고 있다. 안씨는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 대표가 다른 사람 명의로 계속 공연을 기획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공연 출연 시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지원금 배제나 과태료 등 사후제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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