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남북 군사회담의 일관된 주제는 상호간의 적대행위 중단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을 체결하면서 군사분계선(MDL) 남북으로 2㎞의 공간을 비무장지대(DMZ)로 설정했지만, 지난 60여 년간 협정 위반건수가 수십만 건에 달할 정도로 유명무실해진 탓이다. 하지만 군사적 적대 행위의 범위와 내용에 대해 남북간의 인식차가 워낙 커, 남북 군사회담에 북한이 호응하더라도 구체적인 회담 의제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17일 적대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남북군사당국회담을 제의하면서도 ‘적대행위’의 범위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보다는 북한의 반응들을 보면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집요하게 중단을 요구하는 적대행위는 단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다. 우리측은 “방어적이고 연례적인 훈련”이라며 맞서지만, 북한은 B-1B전략폭격기 출격을 포함한 미국의 확장억제까지 시비를 걸며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존엄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2015년 8월 남북 고위급 접촉, 대북전단 살포는 2014년 10월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이 막판까지 걸고 넘어진 이슈다. 우리 정부는 대북확성기나 대북전단 살포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더라도, 군사훈련 중단은 수용하기 어려워 남북이 첨예하게 맞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의제에 포함해야 회담에 응할 것이라며 역제안을 해올 가능성도 있다.
우리 군의 요구사항은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4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북한 무인기 침투사실이 확인되면서 시급히 중단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부각됐다. 또 2015년 목함지뢰 도발에서 드러난 지뢰 매설은 물론이고, 정전협정이 금지하는 불법 화기를 DMZ 안으로 반입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도록 북한을 향해 지속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서 차관은 아울러 이번 군사회담 대표단의 급도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서 차관은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 과거 회담 사례 등을 고려해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회담 대표단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군사회담은 급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뉜다. 본회담에 앞선 실무회담은 남북의 대령이 머리를 맞대고, 장성급 회담에는 소장, 고위급 회담에는 중장 이상이 대표로 나선다. 급이 가장 높은 건 국방장관회담이다. 이중 고위급 회담의 경우 2014년 10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김관진 안보실장에게 회담을 제안하면서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대신 내보내자, 우리측은 미국 출장 중이던 류제승 정책실장을 불러들여 맞대응을 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관진 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 직후 무박 4일간의 마라톤회담을 했는데, 이때 남북은 군사회담이 아닌 고위급 접촉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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