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모르던 중학교 시절 대학생 시위 기사에 유난히 관심을 가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라 대학생 시위가 적지 않았을 텐데도 지방 도시의 신문에는 귀퉁이에 기사가 한 토막 정도만 실리다 보니 궁금증이 더했다.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확인을 할 길이 없었다.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특이한 것은 그런 기사가 나온 즈음에는 통상 무장간첩이 내려왔다거나 자수했다는 보도가 소총을 둘러멘 간첩 사진과 함께 1면에 특필됐다. 그래서 시위를 자주하면 간첩 기사가 1면 톱으로 올라온다는 사회적 패턴을 나름 터득했다.
▦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에서는 안보 냉소주의가 팽배했다. 군사정권은 늘 북한의 남침 위협을 과장했고, 학생들은 “또 협박이네”라며 냉소적 태도를 취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재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 일어나 대통령의 공식ㆍ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이 사건조차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공작이라는 시각으로 봤다. 군사정권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정작 안보는 중요했으나 학생들은 군사정권에 안보의식을 강요당하지 않으려 했다.
▦ 독일 통일과 구소련 해체 이후에는 안보 이슈가 다소 시들해졌고 오히려 통일 논의가 활발했다. 하지만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금강산관광 등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진영의 갈등이 격화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출범 때부터 사드 배치 문제에 미국과 중국까지 개입하면서 중대한 이슈로 부각됐다. 문 정부는 안보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안심이 된다. 하지만 걸핏하면 정파적 이익에 따라 안보 이슈가 철저히 이용당하는 행태는 군사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 에너지 안보 불감증이 걱정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공사가 끝내 일시 중단됐다. 공론화한다더니 구태의연한 날치기를 동원한 것이 찜찜하다. 안전도 중요하나 안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안보를 위해서는 군사력뿐 아니라 경제력도 강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에너지다. 우리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한다. 행여 국제분쟁으로 해상수송로가 막히면 큰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고립된 ‘에너지 섬’이다. 에너지가 부족해도 인근 국가에서 공급을 받을 수 없다. 에너지는 곧 안보라는 의식이 없다는 게 걱정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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