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혹은 고전의 사상가를 이해할 때 일반인의 선입견이나 입문서의 과도한 단순화는 두고두고 고전, 혹은 고전의 사상가를 오독(誤讀)하게 만든다. 대학원 시절 철학공부를 할 때만 해도 입문서에는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라고 분류해 놓았다. 그러다 보니 하이데거를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딱지가 틀렸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까지의 공부였다. 결국 그의 대표작이라는 <존재와 시간>을 원문으로 읽고 또 읽기를 한참이나 반복한 다음에야 그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라 정반대로 존재론자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 딱지를 벗기고 난 후에는 <존재와 시간>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3대 철학서 중 하나가 아니라 인간과 역사의 문제를 기존의 어느 철학자도 접근한 바 없는 새로운 방법으로 탐구한 가슴 뛰게 하는 ‘쉬운’ 고전임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서양철학의 3대 난서(難書)로는 그밖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 중 하나를 꼽는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7년 한학자를 찾아가 <논어>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필자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했다. “공자 말씀하고 있네”로 상징되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구닥다리의 상징 공자, 좋기는 한데 모호하기 그지없는 격언 모음집 <논어> 정도가 그때의 필자 수준이었다. <존재와 시간>의 편견을 깨고 제대로 이해하는 데 거의 1년 정도의 시간이 들었는데 우리의 동양고전이라는 <논어>는 오히려 더 가까워서 그런지 꼬박 4년을 파고드니 겨우 “아!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와 논어의 모습은 실상과 너무나도 다르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공자가 위선(僞善)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그래서 그가 위선을 비판할 때마다 반드시 왜 곧음(直ㆍ직)을 강조했는지를 이해했을 때 소름이 돋는 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논어> 속으로 들어가자.
# 1. 어떤 사람이 원한(怨)을 덕(德)으로 갚는 것은 어떠냐고 묻자 공자는 쏘아붙이듯 되물었다. “그러면 덕은 무엇으로 갚은 텐가?”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덕은 덕으로 갚아야 하고 원한은 곧음(直)으로 갚아야 한다.” 아닌 척하고 숨기지 말고 바른 도리를 따라 되갚으라는 말이다. 이게 우리가 흔히 아는 공자 말씀? 당연히 아니다.
# 2. 공자는 주변에서 다들 곧다고 평하는 미생고(微生高)라는 사람에 대해 촌철살인의 말을 남긴다. “누가 미생고를 곧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려달라고 하니 옆집에 가서 빌려다 주는구나!” 그냥 없으면 없다고 하는 게 곧음인데 굳이 옆집에 본인이 가서 빌려와서 다시 내어주는 것, 공자는 거기서 위선을 본 것이다.
# 3. 수제자 안회(顔回)가 죽었을 때 안회의 아버지 안로(顔路)는 안회의 장례에 쓸 곽(槨ㆍ덧널)을 살 수 있게 공자의 수레를 팔아 달라고 했다. 공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 아들도 관(棺)은 있었지만 곽은 없었다.” 이것이 공자의 곧음이다. 그 답은 바로 뒤에 이어진다.
# 4. 섭공(葉公)이 자신의 통치를 자랑하여 말했다. “우리 고을에 곧게 행동하는 궁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는 아버지가 훔쳤다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우리 당의 정직한 자는 이와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숨겨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겨주니 곧음이란 바로 이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힘차게 출범중인 집권 진보세력은 위선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그런대로 성공할 것이고 야당 보수세력은 곧음을 되찾아야만 회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공자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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