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구서 가장 번성했던 시장
300여개 점포, 이젠 30개 남짓
동작구 2021년 종합행정타운 건립
“애들 셋 대학 보낸 고마운 곳 없어진다고 하니…” 연일 한숨
“(가게가) 한창 잘 될 때는 여기 앉을 새가 없었어.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맞춤 정장을 해다 입었는데, 하루에도 몇 명씩은 왔으니까. 단골도 많았지. 시장이 제일 번성했을 때는 가게가 300개는 넘었을 거야. 지금은 30개도 안 되는 것 같지만…”
11일 오후 손님 한 명 없이 텅텅 빈 시장, 5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낡은 수선집 안에 앉아있던 한성택(74)씨는 옛날을 떠올리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아들을 공학박사로, 딸을 번듯한 직장인으로 키워냈지만 이제 개시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다고 했다. 대형마트에 밀려 전통시장이 쇠락할 즈음부터다. 한씨 말마따나 시장 주 통로엔 그나마 문을 연 가게가 보였지만 양편으로 여러 갈래 뻗어나간 자리엔 모두 불이 꺼진 빈 가게뿐이었다. “베트남전 다녀온 뒤로 평생을 바친 시장인데 곧 없어진다고 하니까 요즘 속이 말이 아니야.”
서울 동작구 지하철7호선 장승배기역 인근을 굳건히 지키던 ‘영도시장’이 곧 사라진다. 동작구가 시장 부지를 헐어낸 공간에 구청 구의회 경찰서 등을 모아 2021년까지 종합행정타운을 짓기로 결정했기 때문. 계획대로라면 시장은 아무리 늦어도 2019년 철거된다.
1968년 세워진 영도시장은 90년대까지만 해도 동작구 인근에서 가장 크고(면적 4,865㎡) 번성했던 시장이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던 지붕이 있는 상가형건물 안에 둥지를 튼 게 인기 비결이었다고 한다. 상인 정모(75)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사가 가능했고, 가끔 풍물꾼들이 찾아올 때면 부침개와 막걸리를 상인 손님 할 것 없이 나눠먹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시장이 세워질 때부터 함께 했다는 이승만(80)씨는 “70년대 채소 장사할 때는 하루에 40만원어치를 팔아본 적도 있다”고 했다. 당시 짜장면 가격은 100원 남짓. 이씨는 “그 돈으로 애 셋을 대학까지 보냈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장이냐”고 애정을 드러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은 개발 바람과 대형마트 범람에 맥없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다 싶더니, 5년 전부터 들려온 행정타운 건립 소식에 현재 시장 공실률은 72%에 달한다. 현재 남아 있는 상인은 대부분 70대 이상이다. “돈 없는 사람들만 여기 남아 있는 거지. 월세 12만원 내고 장사하던 늙은이들이 다른 데서 어떻게 먹고 살겠어요.” 동작구는 신청사 1층에 영도시장 상인들을 위한 상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혹여 늘어날 월세 부담에 당장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처지라 꿈 같은 얘기다.
보상금이나 시장 철거 일정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 동작구는 내년 상반기쯤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 연말까지는 완전히 시장을 비우겠다는 계획이다. 상인들은 못내 씁쓸한 반응이다. “늙고 힘없는 우리가 물러나는 게 도리겠지만 너무 무시는 안 해줬으면 해요. 그래도 우리가 이 지역을 50년 동안 먹여 살렸으니까요.”
글ㆍ사진=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