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쿠데타 저지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쿠데타에 맞서 희생된 시민과 군인을 추모하며 “배반자의 목을 베겠다”고 다짐했다. 야당 측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1주년 행사를 계기로 사형제 부활 여론몰이와 독재권력 강화에 나선 것으로 평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 있는 ‘7ㆍ15 순교자의 다리’에 몰려든 시민 수만명 앞에서 “꼭 1년 전 이 시간에 반역 행위가 있었다”며 “이 나라를 향한 공격은 계속될 것이기에 우선 이 반역자들의 목부터 베어내겠다”고 공언했다. 시민 가운데서 “우리는 사형을 원한다“는 구호가 나오자 사형제 부활 가능성을 재차 거론하기로 했다.
7ㆍ15 순교자의 다리는 1년 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 호소’ 영상을 보고 쿠데타 가담 부대와 맞서기 위해 몰려든 시민 30여명이 사망한 장소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들을 포함해 쿠데타를 막으려다 사망한 250명을 추모하며 “그날 밤 이들(희생자들)은 총 대신 깃발을 들고 있었고, 더 중요한 사실은 강한 신념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비날리 이을드름 총리와 상의해 쿠데타 가담자들이 법정에 “(쿠바에 있는 미국 수용소) 관타나모 같은 동일한 옷을 입고 나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쿠데타 가담 전직 군인 중 하나가 ‘영웅’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법정에 나와 논란이 일자 이에 대응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6일 새벽에도 앙카라 의회를 방문해 기념행사를 이어갔다. 쿠데타군이 의회를 공격하기 시작한 시점이 1년 전 16일 새벽이기 때문이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지난해 7월 15일 쿠데타 저지가 “제2의 독립 전쟁”이라고 의의를 높게 평가했다. 1920년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독립 현대국가 수립과 에르도안의 쿠데타 저지를 동격으로 올린 셈이다. 에르도안 정권의 ‘7월 15일 띄우기’는 지난 9일에 열린 대규모 반정부 집회와 대조를 이루며 정확히 절반으로 갈린 터키의 민심을 보여주고 있다.
야권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 잔당 처벌을 구실로 5만여명을 체포하고 공무원 15만여명을 해임한 것이 쿠데타와 관계없는 자신의 반대파까지 척결해 독재 권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는 의회 연설에서 “지난해 폭격을 견딘 이 의회는 오히려 그 기능을 상실하고 권한을 잃었다”며 “정상화 대신 영구한 국가긴급사태가 도입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 15일 군부 내 반에르도안 부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에게해 휴양지에서 머물던 에르도안 대통령을 추적하는 한편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장악하려 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에 충성하는 시민과 군대가 적극 저지해 실패로 돌아갔다. 에르도안 정부는 쿠데타의 배후를 미국에 거주하는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으로 지목했다. 귈렌은 배후설을 부정했고 미국 정부도 터키 정부의 송환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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