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망 이튿날에도 보도 통제
간암으로 인한 자연사 강조하며
웨이보 등 추모 글도 검열 삭제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 사망 이후 부인 류샤(劉霞)의 신병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류샤오보의 해외 치료 요구를 외면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으로 곤혹스러워진 중국 당국이 상황 관리 차원에서 류샤의 가택연금 해제와 출국 허용 요구에는 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 사망 이튿날인 14일에도 관련 보도를 철저히 통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문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 정도가 류샤오보의 사망 소식을 비교적 길게 전했지만 핵심은 “중국 정부는 최고의 의료진을 동원해 집중 치료했다”, “그가 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B형간염 보균자였다”는 내용이었다. 류샤오보가 간암에 걸려 자연사했을 뿐 중국 정부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신화통신과 환구시보가 그의 사망 소식을 짧게 전하며 서구의 비판을 반박했을 뿐 다른 관영매체와 일반 매체들은 일절 관련 보도를 다루지 않았다. 전세계가 류샤오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있지만 정작 고인의 조국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면서 사망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는 셈이다. 중국 당국에서‘RIP(평화롭게 잠들다)’라는 표현까지 삭제하는 가혹한 검열을 하는 가운데 그나마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검열을 피한 게시물들이 조금씩 퍼지는 정도다.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 사망이 가져올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외교부는 해외의 애도 분위기를 겨냥해 “내정간섭 말라”고 목소리를 높인 데 이어 류샤오보의 수상 경력까지 되짚으며 “노벨평화상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당국이 류샤오보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즉각 화장해 바다에 뿌릴 것을 종용하고 있다는 대만ㆍ홍콩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다. 주노르웨이 중국 대사관은 류샤오보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던 베리트 라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대표의 방중 비자 신청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류샤의 출국을 허락하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3일 “류샤가 중국을 떠날 수 있도록 중국 당국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노벨위원회도 한목소리로 류샤의 가택연금 해제와 해외 출국 허용을 요구했다. 류샤의 해외 출국은 류샤오보 생전 마지막 소원이었다.
중국 당국은 2010년 류샤오보가 옥중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해외언론의 주목을 받던 류샤의 시상식 참석을 막기 위해 가택연금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후 류샤오보가 지난 5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된 후에야 두 사람은 8년 만에 재회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면서도 류샤오보가 해외치료를 원한 건 남겨질 류샤를 위해서였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류샤오보는 임종 직전 류샤에게 “잘 살아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류샤의 가택연금 해제와 출국을 허용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중국 외교부는 류사의 출국 여부에 대해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모호한 답변만 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이번 사건의 파장을 서둘러 덮으려 하는 점으로 볼 때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류샤가 출국해 남편의 수감 및 치료과정에서의 인권탄압 사례를 폭로할 경우 중국 당국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에 몰릴 수 있어서다. 다만 오는 10월 말 시진핑(習近平) 2기 체제가 출범할 제19차 공산당대회 이후엔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류샤오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모는 이날도 이어졌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페이스북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비통함을 느끼며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프랑스 정부는 외무장관 명의의 성명에서 “자유와 인권을 위한 평화적 투쟁을 해 온 이 지성인은 미래세대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도 애도의 뜻과 함께 “중국의 인권상황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은 성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깊이 슬퍼하면서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다”면서도 중국 정부를 향한 비판이나 요구는 언급하지 않았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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