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서 제품 만드는 기업
GDP 기여해도 일자리 못 늘려
이런 경제 틀ㆍ체질 모두 바꿔야
OECD 공무원 1000명 당 83명
우리는 33명… 증원해야 할 때
제조업보단 서비스서 고용시대
독소조항 뺀 서비스법 제정해야
4차산업 걸맞게 규제도 풀어야
野도 국민 삶의 질 위해 협조를
“자산 총액 순서의 10대 기업순위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이제 국가에 기여하는 순위는 근로자를 얼마나 고용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가에 달렸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2일 서울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우리 경제의 틀과 체질을 일자리 구조로 바꿔야 한다”면서 재계 순위를 따지는 기준 역시 일자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8일 예정된 일자리위원회와 국내 10대 대기업ㆍ5대 중소기업 간담회도 자산이나 매출이 아니라 임직원이 많은 순서로 만나면서 과거 10대 대기업으로 꼽혔던 포스코와 GS, 현대중공업 등은 제외됐다. 이 부위원장은 “다른 나라에서 부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는 기여하겠지만, 일자리를 통한 서민층과 중산층의 소득 향상에는 기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_일자리위원회가 출범(5월 16일) 두 달을 맞았다. 그 동안의 성과는.
“노동계는 임금 상승을 억제한 재원으로 일자리 창출과 정규직화에 앞장서겠다고 밝혔고, 재계에서도 신규채용 확대와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짧은 기간 동안 노ㆍ사가 양보하고 배려하게 된 변화는 분명 성과다. 그러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은 일자리 고속도로(인프라)를 건설하는 과정이다. 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일자리 고속버스가 쌩쌩 달릴 것이다.”
_공공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고 있는데, 장기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건 분명할 텐데.
“공무원의 수는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비대해서도 안 되고 너무 말라서도 안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소 체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구 1,000명 당 공무원이 평균 83명인데 우리나라는 33명에 불과하다 보니 국민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공무원 증원은 사회적 비용보다 편익이 클 경우 정당화된다. 지금은 33kg인 공무원의 살을 찌워야 할 시점이다.”
_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빠른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금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뿐 아니라 공공기관도 함께 움직여줘야 하는데,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입지가 불안하다 보니 속도감 있게 안 움직이는 부분이 있다. 조직 정비가 빨리 돼야 한다.“
_무기계약직도 사실상 비정규직인만큼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2002년 노사정위의 협의에 따라 무기계약직은 정규직에 포함된다. 따라서 비정규직 개념을 바꾸려면 노사정위에서 다시 논의를 해야 한다. 다만 비정규직의 특성은 정년 보장이 안 된다는 것과 낮은 처우인데, 무기계약직은 정년은 보장되지만 처우가 정규직과 다르다. 그래서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동일가치노동에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원칙을 확립해 나가려고 한다.”
_잇따른 버스운전사들의 졸음운전이 빚은 참사를 계기로 ‘무제한 근로’를 허용하는 26가지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례업종을 무조건 줄일 수는 없다. 업종이나 업무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운송업은 바로 생명과 직결돼 근로여건 등을 합리적으로 고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당장 현장의 버스운전사들에게 ‘8시간만 일하라’고 하면 불가능하고, 업체도 운영이 안 된다. 실태조사를 통해 양측이 만족할 지혜를 짜내겠다. 문제는 현재의 기준도 안 지킨다는 거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보면 4시간 운전을 하면 30분간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런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다.”
_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민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할 텐데, 민간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영역은 어디라고 보나.
“서비스업이다. 과거에는 제조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지만, 이제는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 수출보다는 소비, 그리고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니 이에 맞춰 정책도 수출 중심의 대기업ㆍ제조업 중심에서 소비와 중소기업ㆍ서비스업 중심으로 가야 한다.”
_그런 취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반대해 온 서비스산업발전법(서비스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인가.
“서비스법은 필요하다. 문제는 내용이다. 지금 일자리위원회에서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장 큰 논란거리인 ‘의료민영화’ 같은 조항들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그런 독소조항을 수정하고 서비스법은 통과시키는 것이 맞다. 다만 지금 시대정신은 양극화 해소다. 시대정신과 반대로 가는 규제완화는 경계해야 한다.”
_시대정신과 같은 방향의 규제완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혁파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는 데이터에서 나온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신성장 동력인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데이터분석 등의 분야는 안 되는 것만 열거해놓고 나머지는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갈 것이다. 아울러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지만 공공데이터센터를 만들어 공공부문의 데이터를 개방해 청년들의 창업여건을 만드는 등 미래형 신산업을 적극 발굴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
_정부가 일자리 만들기의 마중물로 표현한 추가경정예산안이 장기표류하고 있고, 입법이 필요한 각종 일자리 정책도 국회에서 멈춰있는 상황이다.
“정치에서 완봉승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야 협치가 가능하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면서 이해관계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의견을 수렴하는 등 충분히 소통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을 바탕으로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하면서 협조를 요청하면 야당도 돕지 않겠는가. 다만 야당은 정부에 대한 견제가 큰 역할이지만, 국가와 국민의 삶의 질 제고라는 본질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누구도 이 본질에서 벗어나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인터뷰=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정리=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