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등 자신이 만든 최근 화제작에서 4차원의 존재 등 초현실적이고 미래적인 화두를 주로 던져왔다. 그런데 오는 20일 개봉하는 신작 ‘덩케르크’에서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1940년대로 떠난다. 영화는 독일군과 싸우다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 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탈출 작전을 그린다. 놀란 감독이 역사적 사실을 70여 년이 지난 지금 스크린으로 옮겨온 이유는 무엇일까.
놀란 감독은 13일 오후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열린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덩케르크’가 지닌 시대적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관객들이 화합하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놀란 감독의 고향인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주요 대도시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세력에 의한 잇단 테러 위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 사회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아 곳곳에서 폭발과 총성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놀란 감독은 뎅케르크 철수 작전을 통해 공존의 화두를 던지려 한 것으로 보인다.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지닌 “생존 드라마”에 큰 의미를 뒀다. 전쟁터에 고립됐던 40만 명의 연합군 중 무려 34만 명이 살아 고국으로 돌아간 극적인 스토리에 대한 끌림이다. 놀란 감독은 “스토리텔러(이야기꾼)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며 “난 어려서부터 들어 뼛속 깊이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들어보지 못한 위대한 작전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적진에 고립된 군인의 구출 작전이란 영화적 소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98년 세상에 내놓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큰 틀에서 비슷하다. 놀란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레퍼런스(참고)했다”며 “관객에 괴로움을 주지 않으면서 긴장과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놀란 감독은 영화에서 웅장한 폭발 장면보다 군인들의 심리 묘사에 집중한다.
1988년 영화 ‘미행’으로 연출을 시작한 놀란 감독에게 ‘덩케르크’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첫 작품이다. 그는 영화적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덩케르크 작전에 쓰인 스핏파이어 등 옛 전투기를 비롯해 민간 선박 13척과 1,300명의 배우를 투입했다. 디지털이 아닌 필름으로 촬영해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부각한 게 특징이다. 비극을 따뜻하게 표현한 화면과 달리 영화 속 사운드는 차갑고 어두워 묘한 긴장감을 준다. ‘덩케르크’의 영화 음악은 한스 짐머가 만들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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