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가 김상순(55)씨는 ‘꿀벌 몽상가 ’로 통한다. 페이스북에 자신이 키우는 꿀벌 이야기로 ‘맘 내킬 때 쓰는 꿀벌 편지’를 연재하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음이 동할 때 쓴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반응이 좋다. 페북 친구는 물론이고 그의 꿀벌 철학에 매료돼 충성 벌꿀 고객이 된 경우도 많다. 벌통 300개, 전업 양봉가 치고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채밀하기가 무섭게 주문이 밀려드는 인기 벌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꿀벌을 처음 만난 건 40대 초반이었다. 제약회사에 다니다 화장품 대리점을 열어 독립했다가 IMF가 터지는 바람에 다시 제약 쪽으로 돌아왔다. 그 즈음 아피톡신(건조정제봉독)으로 만든 제품이 출시됐다.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생산하지 않은 제품이었다. 서비스차원에서 거래선 에 제공했다. 영업 이익이 제로였다. 회사에 찾아가 공급 단가를 5,000원만 낮춰 달라고 부탁했더니 매몰차게 거절했다. 불쑥 오기가 생겼다.
“직접 만들어보자 싶었죠. 제약회사 출신이니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단돈 5.000원에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전 재산을 털어서 벌 8통을 샀다. 대구 칠곡 현대공원 뒤편 공터에서 양봉을 시작했다. 공동묘지 아래 텐트를 쳤다. 인터넷에서 꿀벌동호회에 가입하고 전국에서 이름난 고수들을 찾아다녔다. 처음엔 꿀을 받지도 않았지만 차츰 벌독을 모으는 데서 채밀로 일의 중심이 옮겨갔다. 꿀벌을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된 이들은 실전가들이었다.
“이론가들은 말 그대로 이론뿐입니다. 본인들도 본인의 이론대로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실전 고수들을 찾아 다녔죠. 철원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고수가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실제는 이론화하기 힘들다.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고수들은 짧은 몇 마디로 양봉의 핵심 중의 핵심을 뀄다.
“양봉은 한 자리에서 하는 게 아니라 꽃을 찾아 다닙니다. 벌통을 트럭에 싣고 꽃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죠. 이때 이동하는 시기나 방향이 중요한데, 고수들은 ‘감’으로 맞춥니다. 어떤 기술이나 지식도 그분들의 감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설명은 못 하세요. 그렇지만 언제나 그분들이 옳습니다.”
실전가들을 충실하게 따라서인지 김 씨도 이론보다는 실전에 강한 양봉가로 통한다. 간혹 공공기관에서 초청을 받아 초보 양봉인들을 대상을 강의를 할 때가 있다. 으레 이론가들에게 더 많은 시간이 배정되지만 인기를 끄는 건 언제나 김 씨를 비롯한 실전가들이다. 질문이 끊이지 않아 예정된 강의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본인도 실전 고수들에게 그런 수업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다.
실전 지식을 체득하기까지 다양한 시도도 했다. 애벌레에게 값싼 항생제 대신 한약제를 달여 먹였다. 그러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고민 끝에 천연항생제 프로폴리스를 썼다. 꿀벌이 스스로 프로폴리스를 수집해서 자립한다는 것에 착안했다.
벌통을 놓는 자리마다 불로 소독을 하고 쥐가 뚫고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벌통 아래 보도블록을 깔았다. 여기다 고양이도 키운다. 꿀을 반드시 페트병에 담는 것도 김 씨만의 노하우다. 유리병이 깨져서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전 지식 덕분에 언제가 인기 강연자로 손꼽힌다.
어느 사이 알아주는 양봉가에 ‘꿀벌 몽상가’로 자리를 잡았지만 큰 욕심은 없다. 지금 터를 잡은 달성군 하빈 골짜기에 ‘벌꿀체험농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저온창고를 하나 더 지어서 식재료를 보관하면서 꿀고추장, 꿀매실을 담그기나 벌꿀집으로 밀납초 만들기 체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밀납초는 현재 인터넷으로 완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의외로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여기에 일 년에 한편씩 연극 무대에도 서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연중계획이다.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5년 전부터 옛 친구들과 다시 뭉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어나라 알버트’를 무대에 올렸다. 스물다섯 살 때 송승환과 기주봉 씨가 공연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나도 꼭 저 작품을 해야지’ 결심했던 극이었다. 30년 만에 버킷 리스트를 실현한 셈이라고 했다.
“벌과 연극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술과 이론이 아무리 뛰어나도 세월이 주는 ‘감’을 이길 수는 없다는 거죠. 이십대 시절 해봤던 역할을 다시 맡아서 연기를 해보면 가사가 폐부를 파고드는 느낌 자체가 다릅니다. 같은 대사와 몸짓이라도 전혀 느낌이 다르다는 몸으로 느껴집니다. 연극을 조금 더 이해한 기분입니다. 벌도 연극도, 이제야 감이 생긴 거죠, 하하!”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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