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파인더] “정책 전환은 원안법에 해당 안돼”
막대한 예산 투입ㆍ손해 예상 땐 정책 변경의 ‘법적 근거’ 있어야
최종 중단 땐 특별법 등 절차 필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원전 옹호론과 반대론이 과장된 주장을 사실로 포장해 퍼뜨리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원전 옹호 측은 건설 중단 과정 자체가 위법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반대 측은 관련 업체들까지 ‘원전 마피아’라 비난한다. 오는 13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 안건을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후 이어질 공론화 과정까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최근 빚어진 논란들의 사실 여부를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이 원안법 위반인가
원자력안전법(원안법)은 원전 ‘안전’에 대한 규제다. 사업자의 무자격이 확인됐거나 천재지변, 국가재난 등이 발생했을 땐 안전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전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원안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광암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는 “신고리 5ㆍ6호기 일시 중단 사유는 안전이 아닌 ‘정책 변화’이기 때문에 원안법 적용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공사업체에 공사중단 협조요청을 한 것 역시 정책 변화에 따라 절차상 필요한 행정지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위법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단 민간이 해당 요청을 따르는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은 한수원에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원전 건설을 중단할 수 있나
정책은 변경될 수 있다. 하지만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처럼 이미 많은 국가 예산이 투입됐고 추가로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경우엔 변경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률에 특별규정을 추가하는 등의 절차가 있어야 건설 최종 중단 결정을 합법적으로 내릴 수 있다. 정부의 결정에 따른 민간의 손해를 막고, 정부가 책임지기 위해서도 법적 근거는 확보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무회의에서 결정한 건 최종 건설 중단이 아니라 공론화다. 다만 공사를 계속하면서 공론화를 진행하기보다 잠시 중지해놓고 진행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이 판단에 대해 유관 부처나 기관 등과 공식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론화 진행을 큰 틀에서 국무회의가 결정할 수 있는 국가 에너지시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3개월 공사 중단 피해가 1,000억원이 되나
사업자인 한수원의 요청으로 공론화 진행 3개월 동안 공사 중단으로 업체들에 손해가 예상되는 만큼 이는 한수원이 책임져야 한다. 개별 계약에 구체적인 보상 방안이 명시돼 있지 않다면 향후 한수원과 업체 간 협상으로 해결하면 된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손해액 1,000억원은 정부와 한수원이 개별 업체들에 아직 못 받았거나 더 받기로 돼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물어 합산한 대략의 액수다. 실제 배상 절차가 진행된다면 이 중 얼만큼을 실질적인 손해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다툼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한수원 이사회에서 일시 중단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산업부가 공론화 중 공사 일시 중단 협조를 요청한 공문을 한수원에 보냈지만, 법적 강제성은 없다. 이에 협조하기 위해 이사회가 일시 중단을 의결하면 한수원 입장에서는 건설 업체들에 대한 보상 비용을 정부에 청구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공기업 입장에서 정부 요청을 따르지 않는 건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공론화 결과가 건설 중단으로 나오면 어떻게 되나
공론화를 거쳐 나온 결론은 정부에게 ‘권고사항’이다. 이를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정부에게 달려 있다. 만약 공론화에서 최종 건설 중단을 권고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겠다 해도 법적 근거는 별도로 갖춰야 한다. 결국 최종 합법화 여부는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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