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배소정(31ㆍ여)씨에게 닭가슴살은 애증의 존재다. ‘다이어트 대표 식재료’라는 명성에 걸맞게 몇 년째 냉장고의 가장 큰 공간을 내줬지만 그렇다고 즐겨먹진 않는다. 삶아 먹거나 샐러드에 얹어 먹고, 훈제로도 먹지만 그것도 며칠뿐. 나흘도 채 안 돼 비릿한 닭 냄새가 목구멍으로 스물스물 올라오는 기분이다. ‘때려칠까’ 싶다가도 매일 아침 꽉 끼는 바지에 억지로 다리를 밀어 넣을 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지만 물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젠 작심삼일 다이어트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배씨는 다양한 다이어트 식단 요리법(레시피)을 알려주는 블로그를 알게 됐다. 그는 “매일 저녁마다 메뉴를 바꿀 수 있어 질리지 않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며 “이번엔 다이어트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다이어트는 생존술이자 평생의 숙제가 되고 있다. ‘잘 먹고 운동하면 건강한 돼지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식단 관리는 다이어트의 필수다. 그러나 하필 맛있는 음식은 살이 찌고 맛이 없는 건 살이 찌지 않는 게 태반이다. 고구마와 삶은 계란 하나, 그리고 닭가슴살 조금이 하루 식사의 전부인 다이어트 식단. 많은 사람들은 젊은 여성 하루 칼로리 권장량(약 2,00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걸그룹 식단으로 혹독한 몸매 관리에 돌입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전국 2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많은 20대가 식단조절을 위해 식사량을 줄이거나(67.9%)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28.6%) 시도를 한다. 그러나 무리한 식단 조절은 포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최근 칼로리는 줄이면서도 맛은 잃지 않은 식단으로 꾸준히 그리고 ‘맛있게’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난 맛있게 먹으면서 뺀다
맛있는 음식을 찾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맛있는 다이어트 식단’은 밀가루 등을 최소화하는 다이어트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를 찾아 본능을 거스르지 않는 게 핵심이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파스타를 끊은 직장인 양모(29ㆍ여)씨는 실곤약을 이용한 ‘곤약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밀가루인 파스타면(100g당 약 300㎉)을 칼로리 낮은 실곤약(10㎉)으로 대신하는 셈. 곤약은 가격도 저렴하고 포만감도 크면서 식감도 나쁘지 않아 파스타면 대용으로 그만이다. 양씨는 “소스와 함께 먹으면 제법 파스타와 비슷한데다 칼로리 부담도 거의 없어 만족스럽다”며 “칼로리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다”고 말했다.
맛있는 다이어트가 인기를 끌면서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엔 자신의 다이어트 레시피를 올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11일 인스타그램에는 ‘맛있는 다이어트’라는 해시태그(#)로 1만개 이상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72.8kg에서 48kg으로 감량한 본인의 다이어트 노하우를 담은 ‘한 그릇 다이어트 레시피’의 저자 최희정(30)씨는 24만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파워인스타그래머다. ‘과연 다이어트 식단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두툼한 통밀빵 닭가슴살 샌드위치부터 밥 대신 두부와 닭가슴살, 채소를 넣어 만든 두부 유부초밥까지 그가 올리는 다양한 다이어트 식단 사진에는 사람들의 폭발적 질문이 이어진다. 최씨는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이렇게 먹을 수 있구나’라고 여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며 “무조건 샐러드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면 오히려 스트레스 받는 만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보려 고민을 많이 한 결과”라고 말했다.
또 채소 등을 넣고 만든 계란 프리타타(이탈리아식 오믈렛)나 칼로리가 낮은 일본 낫토를 계란 사이에 넣어 오믈렛처럼 먹는 방법 등도 SNS상에서 추천하는 다이어트 식단이다.
금기어 ‘빵’도 다이어트에 OK
다이어트에서 금기어나 다름 없는 간식도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다. 살찔 부담을 줄여주는 빵과 과자는 맛있는 다이어트 간식이 된다. 최근 유행하는 이탈리아 M사 토스트는 다이어터 사이에서 ‘속죄의 받침대’라고 불린다. 과자처럼 바삭한 질감이지만 통밀가루로 만들어 6조각에 180㎉(쌀밥 한 공기는 300㎉)로 칼로리가 낮은 편이어서 어떤 추가 재료를 올려 먹어도 죄책감이 덜 느껴진다는 의미다. 늘 가방에 토스트를 지니고 다니는 고모(30)씨는 “나처럼 간식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이 심심할 때 칼로리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났다”며 “오후 3시 간식이 간절한 시간에 작은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현미로 만든 또띠아 위에 얇게 썬 사과나 샐러드, 견과류 등을 얹고 구워내는 ‘또띠아 피자’는 방송에서 한 연예인이 30kg 가까이 감량할 때 즐겨 먹은 식단 중 하나로 알려져 인기를 끌고 있다. 고구마나 두부 등 재료를 바꿀 때마다 색다른 맛을 낼 수 있고 건강한 포만감도 느낄 수 있어 인기다.
정제된 탄수화물인 밀가루는 빠지고 단백질(프로틴)이 들어간 빵도 ‘빵순이’ 다이어터에겐 작은 기쁨이다. 밀가루 대신 단백질 보충제 가루를, 설탕 대신 고구마나 단호박을 넣으면 달콤하면서도 건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단백질빵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블로거 김유미(28ㆍ여)씨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폭신폭신한 빵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살이 찌지 않는 맛있는 영양식을 먹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니기 어려운 닭가슴살 대신 다이어트 빵을 식사 대용으로 찾는 사람이 늘면서 과거 개별 업체를 직접 찾아 구매해야 했던 단백질빵은 포털 사이트 공식 판매 플랫폼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상에서 인기를 끄는 단백질빵을 판매하는 피트니스센터 살롱드핏의 박지은 대표는 “다이어트와 운동을 할 때 단백질 공급이 필요하지만 기존 다이어트 음식은 직장인들이 챙겨 다니기 어렵고 외부에서 먹기도 쉽지 않아 직접 만들게 됐다”며 “다이어트 식품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어 문의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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