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 하나 있다.
‘조기소집’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등장했다.
신태용(47) 축구대표팀 감독은 9일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경기장에서 취재진을 만나 “대한축구협와 프로축구연맹이 (대표팀 소집을) 1주일 앞당겨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며 조기소집 추진 의사를 밝혔다. 신 감독은 지난 6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조기소집은) 대표팀 감독이나 축구협회 임의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사흘 만에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김호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신 감독 뜻이 그렇다면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힘을 실었다.
한국은 8월 31일 이란(홈)-9월 5일 우즈베키스탄(원정)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 10차전을 치르는데 규정대로면 8월 28일 소집이 가능하다. 축구협회는 8월26, 27일에 벌어질 클래식 경기를 아예 뒤로 미루고 21일에 K리거를 먼저 소집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정작 프로연맹 측은 “축구협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조기소집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비공식적으로도 논의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축구협회는 6월 13일 카타르와 최종예선 8차전 원정을 앞두고도 프로연맹에 조기소집을 요청했다. 이 때는 올 시즌 시작 전 축구협회 기술위가 “6월 카타르전이 고비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조기소집을 고려해 달라”고 일찌감치 부탁해 프로연맹이 클래식 일정을 아예 빼놓은 상황이었다. 반면 이번에는 버젓이 예정돼 있는 경기를 연기해야 한다. 프로연맹이 잡아놓은 예비일로 날짜를 옮기면 큰 무리가 없다지만 먼저 팬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고 각 구단 동의를 거치는 절차가 필요하다.
카타르전 때는 조기소집이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표팀 선수 24명 중 9명이 K리거였는데 두 명이 제주 소속이었다. 조기소집 기간 제주와 우라와 레즈(일본)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이 벌어지는 바람에 정작 이들은 뒤늦게 합류했다. 카타르전 결과도 2-3 참패였다.
‘조기소집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또 요청할 수밖에 없는 축구협회 처지도 이해는 간다. 이란-우즈벡전 결과가 잘못돼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 물거품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겠다는 노력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아쉬운 건 순서가 한참 틀렸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조기소집은 축구협회 코멘트를 통해 언론에 먼저 알려졌다. 프로연맹과 구단들은 기사를 보고 사실을 알았다.
매번 이렇다.
조기소집은 축구협회가 프로연맹과 구단에 사전 양해를 구한 뒤 언론에 밝히는 게 이치에 맞다. 프로축구와 물밑 조율 전에 기자들이 물으면 “말할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 된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늘 언론에 공론화한 뒤 프로연맹과 구단의 답을 기다리는 제스처를 취한다. 정답을 정해놓고 슬슬 군불을 지피며 여론몰이를 하는 식이다. 한국 축구가 벼랑 끝에 섰다는데 “규정대로 하자. 조기소집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구단, 감독이 몇이나 되겠나. 모 구단 관계자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조기소집을 허락할 생각은 있다. 하지만 기사화된 뒤 당사자인 구단은 나중에 통보 받는 과정이 늘 반복 된다"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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