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완상 전 부총리 출연 취소 통보
“저서에 文대통령 옹호해서” 이유
한완상 전 부총리가 KBS 라디오 출연이 돌연 취소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KBS 블랙리스트’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KBS에 아직도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새노조는 10일 서울 여의도동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새노조에 따르면 한 전 부총리는 지난 5일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을 녹음할 예정이었다. 한 전 부총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펴낸 자서전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에 대해 대담을 나누기로 했다.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 KBS로 이동 중이던 한 부 총리는 해당 프로그램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의 출연이 갑자기 취소됐다는 내용이 담긴 통화였다. 작가로부터 KBS 1라디오 등을 책임지는 이제원 라디오프로덕션 1담당(국장급)이 “이 방송을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들었다. 한 전 부총리의 자서전이 문재인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한 전 부총리는 새노조가 인터뷰를 담아 이날 공개한 영상에서 “(이 담당에게) 전화가 왔길래, 책을 읽었느냐니까 안 읽었다고 하더라. 자기가 경솔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장 개인의 돌출적인 행동으로 보기보단 KBS 문화와 구조의 잘못”이라며 “사과를 하려면 사장이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노조는 한 전 부총리의 출연 취소를 두고 “고대영 KBS 사장이 미필적 고의에 의해 블랙리스트(적용)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 사장이 문제적 인물들을 주요 보직에 발탁해 블랙리스트 전횡을 사실상 용인,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노조는 블랙리스트 적용의 중심에 이제원 담당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담당은 지난달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의 한 코너 ‘인문의 숲을 거닐다’에 이정렬 전 판사를 출연시켰다는 이유로 담당 PD에게 경위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이후 헌법의 의미와 개정 논의 등을 다뤘다는 이유였다. 지난 2일 같은 프로그램에 신동만 환경전문 PD가 출연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지적하자,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공정성을 해친다”며 강하게 질타하는 등 프로그램 폐지까지 시사했다는 것이다.
새노조는 “이제원 담당은 그 이후 한술 더 떠 ‘출연자 사전 리스트’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며 “이는 프로그램을 간섭하고 관리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새노조의 성재호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부터 블랙리스트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며 김미화 윤도현 김제동 등 유명 연예인의 갑작스런 프로그램 하차나 19대 대선 전 황교익 음식 칼럼니스트의 KBS1 ‘아침마당’ 출연 취소를 예로 들었다.
KBS 사측은 이날 새노조의 기자회견 직후 이 담당을 직위해제하고 방송문화연구소로 전보 조치했다.
글ㆍ사진=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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