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삼성물산 합병 당시 상황
4월 7일 시작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지금까지 37번 진행됐고, 123명의 진술조서와 서류증거 조사 이후 45명의 증인을 법정에 불러 세웠다. 9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특별검사팀과 삼성 측 변호인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는 쟁점은 국민연금공단이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무리하게 찬성을 해 손해를 입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물론 경제계에선 경영권 승계만을 위한 합병으로 보기 힘든 정황들이 많다며 특히 당시 시장에선 합병에 긍정적 의견이 많았다고 주장한다.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 합병 계획이 발표된 이후 양 사의 주총 승인이 날 때까지 삼성물산 합병을 의제로 다룬 증권사 22곳 중 1곳만을 뺀 21곳이 합병이 긍정적이란 의견을 냈다.
하이투자증권의 2015년 7월 6일 리포트엔 ‘삼성그룹 지주회사로서의 성장성에 주목하면서 바이오 부문이 향후 삼성그룹의 차세대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의견이 실려있다. 유진투자증권은 ‘바이오부문의 기업가치 상승이 낮은 합병비율을 충분히 상쇄(6월 30일)’, HMC투자증권은 ‘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의 성장성 반영 및 합병 시너지 효과로 장기 밸류에이션 매력적(5월 27일)’이란 리포트를 냈다.
당시 해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며 법정 공방을 벌일 때도 경제계에선 이를 국내 간판 기업과 해외 투기자본과의 대결 구도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지난달 27일 이 부회장의 33차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채준규 전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은 “삼성물산 합병은 시너지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채 전 팀장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것은 단순한 시너지 효과 외에도 삼성전자의 기업분할과 추가배당 등 간접효과까지 계산한 것으로 2014년부터 시나리오로 준비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 0.35로 제일모직 지분이 많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합병 비율이 조정된 것 아니냔 의혹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삼성은 이에 대해 의혹 제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합병 비율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본시장법에 따라 양 사의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바이오 부문을 포함했던 제일모직은 당시 잠재 성장성이 높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주가에 반영됐지만 건설과 상사 부문을 포함한 물산은 구조적 한계로 가치가 하락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구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은 2014년 하반기부터 나타나 지속했기에 합병 시기를 늦췄을 경우 합병 비율이 더 떨어졌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전문위원회가 아닌 투자위원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것도 논란거리다. 국민연금은 투자위에서의 의결권 행사는 ‘이례적’이 아니라 ‘의례적’ 절차라고 지적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지침 17조 5항에는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국민연금공단이 행사하되 공단에서 찬성 또는 반대의 판단이 곤란한 경우 의결권 전문위에 요청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연금이 2006~2015년 합병과 관련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 중 투자위가 아닌 전문위에 맡긴 것은 60건 중 단 1건이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져 삼성물산 합병이 무산됐다면 오히려 국민연금 자산가치가 더 하락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당시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 주가가 22% 하락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고 추후 삼성물산에서 약 3조원 규모의 추가 부실이 드러난 점까지 고려하면 합병에 반대했을 경우 국민연금이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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