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독일 함부르크 시내는 격렬한 시위로 내내 몸살을 앓았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19개국 정상들의 공동성명을 통해 파리기후변화협정 지지ㆍ자유무역 수호 의지 등을 재확인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극심해진 반대집회 양상은 ‘글로벌 이슈의 공동 해결’이라는 목표 달성까지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DPA통신 등 독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G20 대신 국경 없는 연대’라는 구호와 함께 이번 G20 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약 10만명에 달했다. 대부분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지만, 이 가운데 8,000여명은 과격 성향의 참가자로 추정된다고 독일 당국은 밝혔다. 실제 7일 밤~8일 새벽 시위대 500여명은 도로에 장애물을 쌓고 불을 지르는가 하면, 상점 약탈까지 하는 등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독일에선 금지된 ‘복면’이 등장했고, 일부 시위자들은 경찰을 새총과 쇠파이프 화염병 등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화합의 장인 G20 현장이 갈등과 이로 인한 폭력사태로 얼룩진 것이다.
경찰도 물대포와 최루가스, 헬기 등을 동원해 시위대 진압에 나서면서 폭력 양상은 더욱 격해졌다. 이로 인해 부상을 당한 경찰관은 200명에 가깝고, 시위대도 수십 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G20 정상회의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무엇보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지구촌 문제 해결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서 트럼프 정부의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에 대한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줬다.
하지만 ‘반(反) 트럼프’ 분위기만으로 이번 반대시위를 설명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BBC방송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09년 런던, 2010년 토론토 회의 때에도 반대시위는 벌어졌다”며 “(G20 회원국인) 세계 19개국 정상과 유럽연합(EU) 최고 관리 2명이 ‘닫힌 문’ 뒤에서(behind close doors) 거래한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정 현안이나 인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 문제를 고작 20여명 정도가 논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의 분출이라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오늘날 난민, 전쟁 등 전 세계의 불행을 초래한 이들이 G20 회의를 방문해 수다를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비꼰 독일의 한 환경보호 단체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한편 함부르크 도심 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회담 일정이 취소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문 대통령은 8일 오후 5시30분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함부르크 시내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로 이동 시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회담을 취소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해당 일정 직전에 있었던 문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간 정상회담 또한 시위 여파로 이동에 차질이 생겨 예정보다 늦게 끝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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