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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칼럼] 우리 보수정당이 살 길

입력
2017.07.0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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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넘는 영국 보수당의 긴 역사

시대변화 따른 개혁으로 위기 넘겨

유권자 요구 수용할 유연성 가져야

영국 집권당인 보수당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정당이다. 공식적으로는 1834년 출범했지만, 전신인 토리당이 1678년에 결성되었으니 300년이 넘는다. 대지주와 귀족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출범한 보수당이 후기 산업사회에서도 건재를 과시하는 모습이 경이롭다. 세계 정치사에서 수많은 정당이 명멸했지만, 영국 보수당은 역사의 격동을 겪고도 살아남았다. 비결은 구질서에 집착하지 않고 시대 흐름을 수용하는 유연한 노선 전환이다.

보수당의 최대 위기는 1846년 곡물법 파동 때 찾아왔다. 1815년 워털루전쟁에서 영국이 주도하는 반나폴레옹연합이 승리한 이후 유럽대륙에서 밀려든 값싼 밀 때문에 밀 가격이 폭락했다. 밀 재배 토지를 대규모로 소유한 지배계급을 대변하는 토리당 내각은 수입 밀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해 밀수입을 사실상 봉쇄하는 곡물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밀 값이 크게 올라 도시노동자와 상공업 종사자들의 고통이 컸다. 당시 로버트 필 총리는 곡물법의 문제점을 깨닫고 폐지 결단을 내렸다. 그 후유증으로 보수당은 분열하고 이듬해 시행된 총선에서 야당으로 전락하는 등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보수당은 근대정당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1874년 총선에 승리해 자유당 장기집권을 끝내고, 30년 집권의 길을 열었다.

또 한 번의 화려한 변신은 ‘보수당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디즈레일리 총리의 사회개혁정책이었다. 그는 당시 시대적 요구로 등장한 노동자 권익증진을 외면하고는 사회통합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공장보건법, 교육법 등 친노동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 보수당에 사회개혁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불어넣었다. 1924년 ‘새로운 보수주의’의 깃발을 내걸어 집권한 볼드윈 총리는 노사화합과 공존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며 이를 업그레이드시켰다. 그 결과 보수당은 수구정당 이미지를 벗고 지지기반을 도시상공업자와 노동자 계층에까지 확대, 명실상부한 국민정당으로 거듭났다.

20세기 말 노동당에 권력을 뺏긴 뒤 13년 동안의 야당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2010년 총선승리도 39세의 캐머런 총리에 의해 이뤄졌다. 그는 과거 보수당이 금기시했던 기후변화, 동성애자 권리 등의 쟁점에 적극적 입장을 보였다. 보수당이 소극적이었던 환경문제와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았다. 캐머런은 자신을 ‘블레어 상속자’라고 공언하면서 일부 좌파정책을 수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최근 방한한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주의의 핵심 본질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변화해야만 한다’는 데 있다”며, “우선 시대적 상황에 맞는 정당이 돼야 집권해서 국민에게 봉사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로 시대 흐름에 부응했던 영국 보수당의 역사는 부럽다.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보면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말이 떠오른다. 영국 보수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흔히 변화를 거부하는 교조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버크는 사회 변화는 혁명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보수당이 거부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구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급진적 개혁이었다. 이런 유연성 때문에 영국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같은 정치적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냉전적 이념의 영향권에 놓인 한국에서 보수의 자기혁신은 보수진영을 단합시키기보다는 갈등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지금 그렇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가라앉는 난파선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자리에 혈안이 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가 일깨우는, 시대 흐름과 유권자의 요구를 수용한 끊임없는 변화 노력이 아쉽다.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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