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정부는 독일을 대북구상 발표의 전진기지로 활용했다. 동서 독일 통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히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독일 구상의 가장 성공적 모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3월9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베를린선언을 통해 ▦대규모 대북경제지원과 남북 당국 간 대화 ▦ 이산가족 상봉 등을 제안했다. 당시 정부는 이미 북한과 물밑접촉을 통해 남북 간 획기적 관계개선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 놓은 상태였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의 요지를 연설 10시간 전에 판문점을 통해 북측으로 사전에 전달하는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치밀하게 배려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베를린 선언 석 달 뒤인 10월 남북은 사상 첫 정상회담을 열었고, 10ㆍ4 남북공동선언 채택으로 이어지며, 노무현정부가 6ㆍ15 공동선언으로 갈 수 있는 초석까지 깔아주었다.
2014년 3월28일 박근혜 전 대통령도 독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다양한 대북 제안을 담은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다. ‘통일 대박론’을 이미 제시했던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 남북 공동번영 인프라 구축 ▦인도적 문제 해결 ▦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을 주창했다.
그러나 결과는 김 전 대통령 때와 딴판이었다.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을 “체제대결 책동 행위”로 규정하고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수위를 더욱 높였다. 남북 간 사전 교감이 없었던 데다 “지금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는 표현들이 문제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드레스덴 선언의 대북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북한을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태도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대북구상 발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직후라는 점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사전에 평화체제 구축 등에 대한 메시지를 충분히 밝혀 놓은 북한의 호응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