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임동초교 등서 현장학습
학생들의 등교가 끝난 지난 4일 오전 10시 경북 안동시 임동면 임동초등학교 교정에 노란색 스쿨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은 임동면 중평리 ‘한글배달교실’ 늦깎이 학생들로 백발의 70~80대 어르신들이었다.
3개월 전부터 경로당에서 한글을 공부해오던 어르신들이 이날 첫 학교 현장 체험학습에 나선 것이다. 손꼽아 이날을 기다린 만큼 ‘백발 소녀’들의 얼굴엔 미소와 함께 긴장감도 흘렀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여자들은 다닐 수 없는 곳으로 생각했던 초등학교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늦깎이 초등생 할머니 16명은 1학년 교실에서 손주 뻘인 햇병아리 4명과 두 시간 동안 수업을 했다. “학교에 처음 와보신 분은 손들어 보세요”라는 정소리(26. 여) 선생님의 질문에 16명 모두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슬쩍 들어올린다.
이들은 한글 받침의 용법 등 국어 기초교육을 받았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은 급식실로 이동해 식판에 음식을 받아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어 기념사진을 찍은 후 경로당으로 가는 스쿨버스에 다시 올랐다. 김옥남(83)할머니는 “평생 학교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손주 같은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보니 너무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 ‘선생님’ ‘학생’의 호칭을 쓰는 게 얼마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모르겠다. 황혼에 갖는 배움의 기회가 정말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번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은 의무교육을 받지 못해 배움이 한이 된 어르신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안동시가 마련한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국어와 수학 미술 음악 등을 배운다. 교육과정은 3년이며 교육장소는 마을 경로당이다. 안동시에서 양성한 강사가 현장을 찾아 교육한다. 한글배달교실 현장 체험학습은 풍산초등학교를 비롯해 온혜, 월곡, 와룡 등 10개 학교에서 진행됐다.
안동시는 2005년부터 비문해자에게 한글교육을 하고 있으나 서울의 2.5배에 달할 정도로 지역이 넓어 면 단위 비문해자들은 교육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안동시는 농촌지역 비문해자를 위한 찾아가는 한글교육 프로그램을 2014년 만들었다. 현재 풍산읍 등 10개면에서 200여 명의 늦깎이 학생들이 한글배달교실의 혜택을 보고 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한글배달교실 어르신들의 건강을 돌봐드리기 위해 방문의료도 제공할 예정”이라며 “어르신들이 행복하고 보람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문해교육에 대한 지원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정식기자 kwonjs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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