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중국 ‘단둥은행’을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지원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며 대중국 압박을 한층 높인 배경에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중국 국영기업의 관련 제재 위반 직접 연관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은 당시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중국 단둥은행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금융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통로를 제공한 중간자 역할을 계속해왔다”며 “이 은행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하고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전면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단둥은행에 미 애국법 311조를 근거로 약 12년 전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과 연루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상대로 취한 ‘제2차적 배척’(secondary boycott) 조치를 또 다시 적용한 것이다.
이날 발표에 따라 미국과 미국 내 모든 금융기관은 자신들이 단둥은행의 상대계좌(corresponding account)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거래 중단은 물론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재무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미 경제잡지 포천의 500 대 기업에 세계 각 지역 정치·경제 상황을 실시간 분석, 보고하는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은 “압록강(Yalu River)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의 국경 지역인 랴오닝성(Liaoning province) 단둥에서 영업하고 있는 이 은행은 비교적 작은 금융기관임은 물론 활동이 주로 그 지역 거래에 국한돼 있어 (미국 기업들의 대중 투자 및 사업과 관련)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룹은 “하지만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에 있어 지금까지 취해온 중국과의 협력에서 더욱 압력적인 접근 방식으로 회귀한 점에 의미를 둬야 한다”며 “유라시아그룹은 그 동안 꾸준히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더욱 강력한 (미국의 대중) 압박 및 제재 조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해왔다”고 상기시켰다.
이 그룹의 마이클 허손 아시아 담당국장은 이번 ‘미·중·북 상황 긴급보고서’에서 “그 동안 중국의 ‘제19차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자신이 국제사회 지도자로서 우뚝 섰다는 각종 업적을 국내에 내세우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온 시진핑 (주석)이 오는 7∼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G20 지도자 회의에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노력에 역행하고 있다는 국제 비난에) 방어적인 입장이 놓이는 어려움에 처해졌다“며 ”두 지도자들(트럼프와 시진핑)의 관계에 상당한 긴장을 더하고 앞으로 서로간 협력을 더욱 힘들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손 국장의 이 같은 지적은 미국 정부가 최근 미국 내 일부 은행(금융기관)들을 상대로 이미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해오고 있어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미 법무부는 지난 해 8월 연방 뉴저지 지방법원에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인 북한의 ‘조선광선은행’(KKBC)의 돈세탁을 지원한 혐의로 중국 ‘단둥훙샹실업’과 주주 마샤훙, 저우센수, 홍진화, 뤄촨쉬를 형사 기소했다. 그러면서 별도로 같은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해 총 7,430만 달러 상당 관련 자금 몰수를 추진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한 FBI 뉴저지 지부에 따르면 ‘단둥훙샹실업’과 개인 용의자들이 관리한 25개 (유령) 회사들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 ‘조선광선은행’을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국제사회의 금융접근 차단 노력을 순회해가며 여러 역외 매체들을 걸쳐 미국 금융시스템을 활용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수십여 개 회사들의 은행 계좌가 결국 중국에 있음이 추적돼 총 12개 중국 은행에 있는 관련 자금 전액이 몰수 대상이라며 미국 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스탠다드차터뱅크’(Standard Chartered Bank)와 ‘도이치뱅크’(Deutsche Bank AG)의 이들 계좌들의 ‘상대계좌’들 압류를 추진하고 있다.
이 소송에는 재무부가 지난 달 29일 제재 대상으로 발표한 ‘단둥은행’의 4개 계좌와 그 곳에 예치돼 있는 추가 자산 및 부동산 관계 이익 모두가 포함돼 있어 이번 문 대통령 방미 시점에 발표된 조치는 최소한 작년 이전부터 진행해온 연장선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는 지난 달 14일 워싱턴 D.C. 지방법원에 미국의 대북제재 대상인 북한 ‘조선무역은행’의 돈세탁을 지원한 중국 ‘밍정국제무역회사’를 기소하고 총 190만 달러 관련 자금 몰수에 착수했다.
사건을 수사한 FBI 애리조나주 피닉스 지부는 문제의 자금이 미국 내 금융기관을 거쳐 결재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그 과정에서 ‘밍정국제무역회사’의 북한 돈세탁에 동원된 회사 및 관계자들 은행 계좌 거래가 ‘단둥훙샹실업’의 북한 돈세탁에 동원된 회사 및 관계자들 은행 계좌와 거래한 증거도 포착했다.
FBI는 더 나가서 ‘밍정’과 ‘훙샹’이 미 법무부가 지난 3월 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연방 텍사스 북부지방법원에 기소돼 총 11억 8,200만 달러의 벌금을 지불하고 유죄를 시인한 중국 국영통신회사 ‘중신통신’(ZTE Corporation)과 거래한 사실을 확인했다.
법무부는 구체적으로 FBI와 미 상무부 ‘산업보안국’(BIS) 수사 결과 ‘중신통신’과 북한 ‘우편통신사(성)’과의 금융거래 관계 사실이 성립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증거는 ‘중신통신’이 검찰에 유죄를 시인하면서 추가 수사 협조를 약속해 자발적으로 제공한 관련 영업 장부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라며, 최소한 4차례에 걸쳐 북한의 돈세탁 거래에 연관된 사실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밍정’이 230만 달러 상당을 송금한 곳이 ‘중신통신’ 당사자(회사 및 개인)의 금융 계좌로 들어간 사실을 보여주는 ‘금융거래추적내역’ 기록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밍정’과 ‘훙샹’, 또 그들의 관사가 미국 금융기관을 통해 서로 달러 결재를 거래한 금액과 날짜를 일일이 밝히고 그 중 ‘중신통신’과의 연관 거래를 꼬집어 냈다.
결국 민간 기업들인 ‘밍정’과 ‘훙샹’이 공기업인 ‘중신’과 함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지원을 돕는 돈세탁에 공모했다는 결론으로, 그 동안 “우리는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해오고 있다”는 중국의 반복된 발표에 트럼프 행정부가 맞받아 들이댈 수 있는 치명적인 카드이기도 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달 초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미국의 제재 조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중국에 먼저 알아서 자체 조치를 취하라고 10개 중국 매체 리스트를 건네줬다고 보도했다.
그 리스트는 미 사법 당국이 ‘밍정’, ‘훙샹’과 ‘중신’, 또 그들의 중국 내외 관련 회사들을 수사한 결과 연관성이 모두 확인된 매체, 관계 회사와 개인들로 알려졌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은 지난 2010년 11월을 시작으로 올해 2월까지 매해 내놓은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이 북한의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피해가는 주요 통로가 되고 있음을 거듭 지적해오고 있다.
뉴욕(유엔본부)=신용일 프리랜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