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ㆍ이집트ㆍ바레인ㆍ아랍에미리트(UAE) 중동 4개국이 카타르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상황의 중심에는 중동 언론의 대표주자인 카타르 소재 국제방송국 알자지라가 있다. 4개국이 카타르에 최후통첩을 보내면서 요구한 13개 조항 가운데 알자지라 및 관련 방송국의 폐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가 이 ‘카드’를 받는다면 알자지라는 끝내 문을 닫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카타르 정부의 결정에 따라 당장 폐쇄될 수도 있는 알자지라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이 4일(현지시간) 전한 보도국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알자지라 영어채널의 자말 엘샤얄 선임특파원은 “어용 방송만이 가득한 이 지역에서 최초의 독립 언론인 우리에게 이런 위협은 일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6년 사우디에서 폐쇄된 BBC 아랍어채널 최후의 편집국장 이언 리처드슨은 “언제든지 직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은 보도국 일원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중동권 국가의 치부를 주저 없이 드러내고 2011년 ‘아랍의 봄’ 때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등 공정 보도를 표방해 신뢰를 쌓아 왔지만, 자국 정부의 통치력에 위협이 될 것이라 여기는 사우디 입장에서는 눈엣가시다. 특히 사우디 등은 알자지라가 ‘아랍의 봄’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이슬람민주주의 정파인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보도를 했다고 문제 삼고 있다. 사우디와 UAE, 시리아, 이집트 등 왕조 및 독재국가는 민주주의와 이슬람주의를 결합해 ‘민주화를 통한 국가 이슬람화’를 추구하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카타르 단교를 푸는 요구 사항 속에 이들이 알자지라 폐쇄를 넣은 이유이다.
알자지라 폐쇄 요구가 아랍권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라는 국제사회의 지적이 적지 않다. 자이드 라드 알후세인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수백만 시청자로부터 존중을 받고 있는 알자지라를 폐쇄하라는 요구는 표현과 의견의 자유를 향한 공격”이라고 우려했다.
알자지라는 2001년 세계를 뒤흔든 9ㆍ11 테러 약 한 달 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하면서 단숨에 세계적 지명도를 얻었다. 아라비아 반도 동쪽 끝 소국에 불과했던 카타르를 서방과 사우디, 이란 사이 중립외교를 구사하는 소강국으로 만든 것은 알자지라의 보도를 통한 ‘공정한’ 여론 조성과 이로부터 나오는 ‘소프트 파워’ 덕분이라고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평가한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 미국의 친사우디ㆍ반이란 노선 강화와 이슬람국가(IS)의 약화로 인한 중동 내 암묵적 공동 전선의 붕괴로 중동 세계 ‘하드 파워(전통적 권력)’의 입장이 바뀌면서 최대 희생양이 될 위기에 놓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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