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라이프]
페트병으로 만든 운동화
군용 모포로 만든 에코백…
버려진 물건 재활용한 제품 인기
# 직장인 김모(27)씨는 지난 1일 서울 명동 아디다스 매장에 들러 러닝화 신제품 ‘울트라 부스트 팔리’를 구매했다. 이 제품은 바다에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ㆍ압축한 뒤 녹여 뽑아낸 원사(팔리 오션 플라스틱TM)를 이용한 아디다스의 신소재 ‘프라임 니트’를 활용해 제작됐다. 발등을 덮는 ‘갑피’와 발목을 감싸는 ‘힐 카운터’를 비롯, 바닥을 제외한 신발 상부 거의 전체가 이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한 켤레 당 페트병 11개가 들어가는 친환경 제품인데다 한정 수량으로 판매돼 김씨는 마음이 더 끌렸다. 그는 “연한 하늘색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든다”며 “일반 러닝화와 비교해 통기성 등 다른 기능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만족해 했다.
# 국악인 정모(39)씨는 1~2개월에 한번씩 서울 이태원에 있는 ‘래코드(RE;CODE)’ 매장을 찾는다. 재고 의류나 사용되지 않은 원단을 이용해 새롭게 만든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만 판매하는 전문 브랜드라 독특한 디자인의 옷이 많다는 점에 끌렸다. 그는 “획일적인 디자인으로 대량 생산된 옷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재킷이나 정장 바지 용도로 만든 개량 한복을 입고 공연하면 관객들도 관심을 보여 자주 구매한다”고 말했다.
페트병으로 만든 운동화나 재고 원단을 이용해 제작한 개량한복처럼 기존에 버려진 제품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활용도를 높이는 업사이클링 바람이 패션계에 불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생활 속에서 버려지거나 쓸모 없어진 물건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에 속하지만, 새로운 디자인과 혁신적인 기능을 추가해 전혀 다른 제품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을 뜻한다. 소비자들도 독특한 디자인에 한정 수량만 생산되는 희소성에 매력을 느껴 업사이클링 제품을 찾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에 희소성 높아
비싼 가격에도 물량 부족
5일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업사이클 브랜드는 100여개, 업사이클 산업 규모는 약 200억원으로 추정된다. 협회는 올해 브랜드가 25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미현 전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장은 “협회가 처음 설립된 2013년만 해도 업사이클링 산업 규모가 100억원대 였지만, 사회적 관심이 늘면서 성장 속도가 빨라져 3년 만에 2배로 커졌다”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제품은 파도에 마모된 둥근 유리조각으로 만든 목걸이, 원형의 자전거 체인으로 만든 시계,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 카시트로 만든 외투, 낙하산으로 만든 가방 등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에어백은 작은 흠집만 있어도 납품이 불가능하고, 낙하산도 군인들이 몇 번 쓰면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만, 원단 품질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업사이클링 소재로 많이 활용된다”고 말했다.
다만 디자이너가 기존 물건(제품)을 수작업으로 하나씩 분해한 뒤 다시 제작해야 해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 보통 1개, 많아야 10~20개로 물량이 매우 적다. 그래서 가격대가 일반 제품 보다 20~30% 가량 비싼 게 단점이다. 때문에 경제력이 있는 30~50대가 주 고객층이다.
그러나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관련 제품의 인기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아디다스 ‘울트라 부스트 팔리’는 지난해 100켤레 한정으로 국내 첫 출시됐을 때 하루 만에 모두 판매됐고, 이번에 출시된 연한 하늘색 신제품도 서울 명동 매장에 입고된 물량(120켤레) 중 66%(80켤레)가 일주일도 안돼 팔려나갔다. 아디다스 명동점 관계자는 “페트병으로 만든 제품은 24만9,000원으로 일반 원단을 사용한 동일 제품(21만9,000원)에 비해 3만원 더 비싼데도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도 연간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해외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어, 수출 비중이 70%에 달한다.
스위스 디자이너들이 천막을 잘라 가방을 제작해 전 세계에서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프라이탁’은 최근 3개 신제품을 출시해 국내 한 온라인몰에서 판매했는데, 물량이 24개 밖에 없어 무작위 추첨으로 구매 순번을 정하기도 했다.
박미현 전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장은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지는 경향이 있지만 업사이클링 제품은 혁신적인 디자인에 희소성까지 더해져 훨씬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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