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독재자(liberal strongman)’. 얼핏 모순된 문구로 보이나, 유럽정치 전문 웹진 폴리티코유럽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한 문구다. 외교와 사회경제 분야에서 유럽연합(EU) 등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선호하고 인권과 문화 다양성을 보장하자고 외치는 마크롱 대통령이지만, 과거 카리스마로 프랑스를 이끌었던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연상될 정도로 강력한 권위를 바탕으로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대선에 이어 6월 총선까지 압승한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3일(현지시간)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에 상ㆍ하원의원 962명을 불러 모아 놓고 자신의 정책 방향을 역설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회의원 3분의 1을 줄이자는 급진적인 정치 개혁을 제안했다.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과 의회의 동의로 수립되는 내각이 권한을 분담하는 이원집정부제 하에서 의회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다. 마크롱 대통령은 “과거에는 절차가 결과보다, 법률이 결단력보다, 상속된 부의 보호가 공평 사회보다 더 우선시됐다”며 많은 의석 수가 비효율과 추가 비용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야당과 언론은 양원을 베르사유에 불러 모은 연설 방식에서부터 마크롱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향한 욕구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급진좌파 ‘프랑스 앵수미즈(FI)’의 장뤽 멜랑숑 대표는 “마크롱이 옛 이집트의 파라오 같은 군주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연설을 보이콧했다. 국제 보도전문방송 프랑스24는 마크롱의 연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표격인 미국에서 대통령이 해마다 자신의 정책 방향을 공개하는 상ㆍ하원 합동연설을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좌파 일간 리베라시옹은 마크롱을 로마 신화 최고신인 주피터(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빗대 ‘베르사유의 마뉘피테르(마크롱의 애칭 Manu+Jupiter)’라는 풍자화를 3일자 1면에 게재했다.
베르사유 연설 전에도 마크롱의 통치는 ‘쥐피테르(주피터) 대통령제’로 불렸다. 신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주피터처럼 ‘구름 위에 앉아’ 지시를 내리고 내각과 여당 ‘전진하는 공화국(LREM)’이 이를 군말 없이 신속히 이행한다는 야유 섞인 별칭이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의 의견을 발표하는 창구 같은 존재가 됐고 엘리제궁 관계자들은 언론과 거의 대화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거칠게 악수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르사유 궁전에서 맞이하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담백하게 내놓은 ‘마크롱식 외교’ 역시 ‘알파 메일(Alpha maleㆍ강한 수컷)’ 이미지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마크롱의 전임자들인 니콜라 사르코지와 프랑수아 올랑드는 거의 매일 언론에 입장을 표명하고 정부와 정당 간 입장 차의 미세 조정에 집중했다. 정부를 무난히 운영하는 데에는 강점이 있지만 역동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받았다. 폴리티코유럽은 “올랑드 정부 때 경제장관으로 활동했던 마크롱이 전임자의 실패를 거울삼아 드골이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카리스마 통치’를 본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념상 자유주의 성향인 마크롱이 자신의 권력과 자유주의 사이 충돌이 발생했을 때 그의 리더십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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