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법 사각 악용 사례 급증
서울시, 작년 4만6052건 부과
자진 철거 유도 취지에도
액수 너무 적어 실효성 미미
“부과횟수 연 5회 이상 늘려야”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사는 주민 A씨는 올해 5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 거주지 인근에 위치한 다세대주택 1층 입주자들이 가건물을 만들어 창고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관련 사항을 구청 민원실에 알렸지만, 구청은 해당 건물은 현행법상 강제철거를 할 수 없어 이행강제금을 부과했다고만 답변했다. A씨는 2일 “구청이 불법 증개축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행정대집행(강제철거) 대신 이행강제금만 부과하고 있다”며 “불법건축을 막으려는 의지가 있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건축법의 사각을 악용, 불법 중개축을 일삼는 일부 건축주와 주민 사이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불법건축물을 단속하고 관리해야 할 구청이 관련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등 사실상 이를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용산구 이태원동에 사는 B씨 역시 얼마 전 비슷한 일을 겪었다. B씨 거주지 인근 3층짜리 다세대주택이 올해 4월 1개층을 증축하는 불법 공사에 들어간 것. 이로 인해 B씨 거주지의 부엌과 거실 등 생활 공간 일부가 노출됐고 조망권이 침해를 받았다. B씨는 즉시 이 사실을 구청에 알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구청 직원이 두 차례 공사장을 방문해 건축주에게 자진시정을 촉구했고 관련 공문도 보냈지만 건축주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자진시정 기한인 지난달 20일이 되기도 전에 해당 건물의 공사가 완료됐다.
그러나 구청은 해당건물에 대한 강제철거를 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용산구청은 “현행 건축법은 불법 건축물의 강제철거 요건을 ‘다른 방법으로 이행을 강제할 수 없고, 불법 건축물이 공익을 심하게 해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며 “대신 해당 건축주에게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구청의 소극적 행정조치를 비판하고 이행강제금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B씨는 “구청은 공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50여일간 이를 중단시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연 150여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택했다”며 “다세대주택 소유주들 사이에는 ‘차라리 1개 층을 증축해 월세를 놓은 뒤 이행강제금을 내 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얘기가 돌 정도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이행강제금을 감수하고 불법증개축을 시도하는 등 건축법의 사각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무허가(신고) 건축물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건수는 ▦2012년 3만3,322건 ▦2013년 3만8,096건 ▦2014년 3만4,560건 ▦2015년 3만9,748건 ▦2016년 4만6,052건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관리 당국 역시 현행 건축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행강제금은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해 불법건축물의 자진철거를 유도하려는 취지임에도 액수가 너무 적어 그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행강제금을 두 배 이상 가중해야 한다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구청 관계자 역시 “강제금 부과횟수를 연 5회 이상으로 늘리는 등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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