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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원래 웃픈 것… 같이 울면 덜 창피하다

입력
2017.07.0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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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 박준 첫 산문집 발간

박준 시인은 1983년생 서울 깍쟁이지만 서정성을 담뿍 담은 시와 산문은 한 세대 위 문인들의 글 같다. 산문집은 가난했던 유년시절, 누이의 죽음 같은 아픈 기억들을 '웃프게' 고백한다. 배우한 기자
박준 시인은 1983년생 서울 깍쟁이지만 서정성을 담뿍 담은 시와 산문은 한 세대 위 문인들의 글 같다. 산문집은 가난했던 유년시절, 누이의 죽음 같은 아픈 기억들을 '웃프게' 고백한다. 배우한 기자

‘소리 없이 강하다.’

시인 박준(34)의 글과 글에 대한 독자 반응은 딱 옛날 자동차 광고 카피를 떠올리게 한다. 현대음악처럼 사전 학습과 반복 경험이 감상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현대 시의 흐름에서 되레 박준의 시는 자기 고백을 노랫말처럼 응축했다. 어렵고 복잡한 난해시가 대세로 굳어져버린 요즘 시단(詩壇)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래되고도 아득한’(시인 허수경) 서정성을 시에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것. 내밀 것이 서정밖에 없는 그의 시는, 바로 그 서정 때문에 쉬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5년 전 낸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는 이제까지 31쇄 8만4,000부를 찍었다. 2년 전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한때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위도 차지했다. 근 10년간 시집이 종합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기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박준이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발행)을 냈다. 제 아비와 자신의 가난, 누이의 죽음 등을 그렸던 첫 시집처럼, 첫 산문집 역시 일상을 글의 밑천으로 가져다 쓴다. 지난달 30일 서울 망원동에서 만난 박준 시인은 “시는 화자, 소설로 따지면 주인공이 있어 작가가 작품 뒤에 머물 수 있다. 산문은 내 얘기를 하는 거라 책으로 묶고 나서 너무 부끄럽더라”라고 말했다. 출판사 사정으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산문집 초판 발행 부수는 최근 펴낸 김영하와 김애란의 소설집 초판 부수와 맞먹는다. ‘소리 없이 강한 작가’에 대한 출판사의 기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난·상실·이별·죽음 등

심드렁한듯 하면서도 따뜻한

기억의 편린 담아 내

신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낸 박준 시인. 표제는 산문집에 실린 ‘고아’란 글의 한 문구에서 따왔다. 배우한 기자
신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낸 박준 시인. 표제는 산문집에 실린 ‘고아’란 글의 한 문구에서 따왔다. 배우한 기자

-산문집에 예전에 쓴 일기를 인용하는 대목이 나온다. 꾸준히 자기 기록을 남기는 성실함에 경의를 표한다. 지금도 일기 쓰나.

“초등학생 때부터 고3때까지 매일매일 쓴 일기가 지금도 있다. 중학생 때는 만나는 담임마다 일기를 쓰게 했고, 고등학생 때는 학교의 방침이었다. ‘방침’으로 일기를 쓰니 누구한테 보여 줘야 했고, 자연스럽게 비밀 일기장이 생기더라. 요즘은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쓴다.”

-‘취향의 탄생’이란 글에서 문청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요컨대 일기 쓰다가 문학소년이 됐다는 건가.

“학창시절 공부도 운동도 못했고 하다 못해 친구 관계가 넓지도 않았다. 잘하는 것 없는 아이가 갖는 결핍, 두려움이 있는데 그게 또 일기 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하지?’ 그게 일기장을 가득 채운 것 같다. 문학은 자기 사유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장르이지 않나. 말하자면 조기 교육을 셀프로 한 거지.”

-등단 무렵은 전문가들도 어렵다고 혀를 내둘렀던 미래파 시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박준 시는 이런 대세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데.

“스무 살 때부터 신춘문예를 준비했다. 남들은 취업 준비할 때 시만 썼는데, 당시 시단에서 전위가 키워드였고 한때 나도 그런 걸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한데 능력이 안 되더라(웃음). 그때 박형준, 장석남 같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떠올렸는데, 새로움으로 무장한 시인이 아니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익숙한 걸 잘 보여 주는 거였고, 이 분들처럼 전통적인 ‘서정의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산문집에서 가족의 가난이나 옛 애인이랑 여행한 걸 무시로 고백한다. 일상이 글의 밑천인데 주변의 반응은.

“아버지는 책 낼 때마다 우셨고, 어머니는 냉정하다. ‘우리에 대해 쓴 글은 저작권을 달라’고 하신다. 누구도 불편해하진 않는다. 없는 얘기도 아니고, 가난이나 무능이 저와 제 가족의 잘못은 아니니까. 개인적 경험을 쓸 때는 의식적으로 보편적인 무엇을 글 끝에 담는다.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같이 울면 덜 창피하니까.”

-가난과 상실과 죽음에 대해 쓸 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기분은 어떤가.

“기억력은 기억하는 능력이 아니라 기억하려는 마음에 달린 거 같다. 그래서 어떤 자극 없이도 과거 일들을 자주 기억하려 한다. 음식이든 장소든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가급적 적어 두는데, 그때 글쓰기는 과거를 날려 보내는 의식 같다. 풍장(風葬)시키는 기분이라고 할까. 너무 생생하고 아픈 기억은 못 쓴다. 적당한 시간을 거쳐 ‘이제는 괜찮아진 일들’을 쓰며 과거와 화해한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도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

산문과 시 함께 엮어 ‘눈길’

-신작은 시도 산문도 있는, 독특한 구성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데 시집은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그런 방식의 책을 내고 싶었다. 제가 출판 편집자라 그런지 아무리 좋은 글도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 있으면 벽처럼 느껴지더라. 긴 산문, 시처럼 짧은 몇 줄의 글을 함께 엮어 숨통이 트이게 했다.”

-첫 시집 냈을 때, 시집 살 돈이 없어 주변에 책을 못 돌렸다는 소식을 듣고 신형철 평론가가 돈을 부쳐 줬다는 말을 들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나서 장단점이 있나.

“돈 빌려준 조건이 시집 5쇄를 넘기면 갚으라는 거였는데, 다행히 금방 갚았다. 방송되기 훨씬 전에! 책이 잘 팔리면 인세가 들어오는 ‘기쁨’도 있지만 경계해야 할 것도 생긴다. 시집이 대중매체를 통해 상품화가 됐으니까. 시는 예술이지만 시집은 출판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지 않나. 이 괴리를 어떻게 해결할지 숙제로 남았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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