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비서실장이 늑장 결재
한미 양국 정상이 30일(현지시간) 첫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성명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성명 내용을 설명하는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도 7시간 20분이나 지난 뒤에 공개됐다. 그간의 관례상 기자회견 등에 앞서 공동성명이 배포된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이 같은 사례가 빈번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동성명 발표가 늦어진 것은 백악관 비서실장의 결재가 늦어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은 문 대통령의 방미 전부터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로 합의한 만큼 큰 틀의 합의는 어렵지 않게 이뤘지만, 세부 문안을 두고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에서는 조구래 외교부 북미국장과 이태호 청와대 통상비서관이 실무 접촉을 주도했다. 양국 실무진은 방미 첫날부터 문 대통령의 공식 일정과 별개로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문안을 조율해 정상회담 당일인 30일 오전에야 합의문을 도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공동언론발표가 정오쯤 끝났는데도 공동성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백악관 측이 내부 절차를 밟고 있다며 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뉴저지주의 베드민스터 골프 클럽으로 주말 휴가를 떠났다는 소식이 오후 4시쯤 전해지자 양국이 공동성명 조율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 측이 이미 합의된 공동성명 문안의 수정을 요구하거나 발표 자체를 취소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결국 백악관은 원안 그대로의 공동성명을 오후 7시가 다 된 시점에서야 발표했다. 라인스 프리버스 대통령 비서실장이 결재를 하지 않으면서 백악관 발표가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버스 비서실장이 결재를 미룬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귀국길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발표를 기다려야 했던 7시간이 7년이 되는 것 같았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정상회담이 끝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공동성명이 발표된 게 처음은 아니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정상급 성명을 채택한 국가는 일본,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베트남, 캐나다 등 6개 국가였는데, 베트남과 공동성명을 채택했을 때는 정상회담 당일 밤늦게 공동성명이 공개됐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공동성명은 사흘 뒤 발표됐다. 반면 일본ㆍ인도와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1시간이 안 돼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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