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가 ‘4차산업혁명’이다.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이제는 조금 지겨워지기까지 한다. 단순히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온 기술 진보의 과정인지, 전기나 인터넷처럼 정말 혁명이라는 말을 붙일 만큼 획기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가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있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변화는 늘 새로운 과제와 갈등을 가져온다. 이들을 조율하고 정리하며, 또 다른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준비하는 시간이 바로 적응의 시간이다.
최근 산업계에서 여러 가지 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주요한 것이 규제완화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빠른데 법이나 정책이 바뀌는 속도는 느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국민의 ‘안전하게 살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성이 검증될 때까지 임시로 허가를 내주거나, 일단 한정된 범위와 요건을 두고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 샌드박스’ 같은 것을 활용한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 모래밭에서는 무엇이든 하면서 놀 수 있도록 한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새로운 기술혁명은 단순히 새로운 상품 및 서비스가 생겨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구조와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발달된 통신망을 통해 개인의 배타적 소유였던 차와 집들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된다. 그러나 이는 택시운전자와 숙박업자들의 이익과 충돌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단순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기존의 직무도 변화가 불가피하고 고용의 형태도 다양화된다. 실업대책 및 노동조합의 역할과 방향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육제도의 변화도 필연적이다. 주입보다는 생각을, 단순지식보다는 융합적 지식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평가가 있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학력고사 시대의 심플한 공정함을 추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주입식 교육만으로 발전이 가능했던 시절이고 지금은 그러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 선진국들은 기술혁명에 대응하여 국가전략을 세우고 조직과 법을 고쳐나가고 있다. 우리 역시 오는 8월경에는 ‘제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한다고 한다. 위원회의 주된 일은 규제개선과 부처 간 칸막이 해소 등이겠지만 이것만이 해야 하는 일의 전부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사회적 갈등의 해소, 일자리 창출과 직무의 개발, 교육 등 다양하다. 따라서 위원회의 조직과 구성에서부터 다양한 이슈를 고려해야 하고 과제의 장ㆍ단기성 역시 감안해야 한다.
국회도 새로운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법안들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런 유형의 입법이 편한 이유는 기존의 개별 법률을 찾아 일일이 개정할 필요 없이 일단 정해두고 나면 특별법의 이름으로 기존의 법률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일목요연하고 시원해 보이지만 그 만큼 문제점과 갈등을 꼼꼼히 정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선진국들이 특별법 위주의 입법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커다란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그 흐름의 크기와 당위성에 압도되어 새로운 눈으로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기 쉽다. 이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며, 그 갈등은 새로운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가톨릭의 성인 추대 절차에서 활용한 ‘데블스 애드버킷’라고 부르는 의도적 비판이다. 막연하게 한 방향으로 생각한 것을 뒤집어 보는 것으로 숨어있던 문제와 침묵하는 갈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변화를 맞는 자세는 두 가지가 있다. 적응과 순응이다. 적응은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여 다음의 발전을 준비한다. 순응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으며, 때가 되면 갈등은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다. 그만큼 지속적 발전을 뒷받침하기도 힘들다. 변화를 준비하는 지금, 우리는 적응의 시간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순응의 시간을 가질 것인가의 선택 앞에 서 있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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