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이 예비 관객에게 처음으로 공개한 것은 한 장의 포스터였다. 포스터 안에는 배우 이제훈의 강렬한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의 얼굴 위에는 ‘박열’이라고 힘 있게 갈겨 쓴 붉은 글자가 씌어있었다. 이후 공개된 포스터 역시 파격적이었다. 박열 역할의 이제훈과 가네코 후미코 역할의 최희서가 포개져 앉아있는 모습까지, ‘박열’은 ‘파격적인 시대극’으로 홍보됐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제훈의 모습을 보고 낯설어 했으며 누군가는 류승범의 모습이 떠오른다고도 했다.
물론 이제훈이 강렬한 눈빛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준익 감독 역시 드라마 ‘시그널’이나 ‘내일 그대와’, 영화 ‘건축학개론’이 아닌 ‘파수꾼’과 ‘고지전’에서의 모습을 보고 캐스팅을 했다. 가장 닮아 있는 캐릭터로는 ‘파파로티’에서의 모습을 꼽을 수도 있겠다. 그의 뜨거운 눈빛은 관객을 잡아끄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묘한 쾌감을 안겨준다.
다만 비주얼적인 면은 그 어느 때보다 거칠다. 이제훈이 ‘박열’을 위해 테스트 분장을 했을 당시 스태프들마저도 그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훈은 “사람들이 처음엔 못 알아보다가 알아보고는 놀라면서 ‘너무 세지 않냐. 이래도 되나?’ 라고 걱정 하시더라.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이제훈이라는 사람이 지워지고 박열이 온전하게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분장을 하고 나니까 상황이 느껴지고 표현 되는 게 달랐다. 본능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되길 바랐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제훈에 의해 재탄생된 박열의 모습은 이제훈을 강하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이준익 감독과 분장팀은 미술적 상상력 대신 당시 신문에 실린 박열의 사진과 후미코의 자서전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고증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눈썹도 손질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뒀다. 마치 일제강점기 현장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제훈은 “그래서 현장에서 보호받지 못했다.(웃음) 컷 하는 순간 방치 됐다. 보통 영화 같으면 분장팀이 단장을 해주는데, 난 더 더러워야 할 것 같았다. 의상도 남루했고 먼지 구덩이에 파묻혀 있어도 어울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박열 캐릭터가 강렬해 보이는 이유는 이제훈의 두드러지는 표정 연기 덕분이 크다. 그는 뜨거웠다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후미코를 생각할 때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개구쟁이가 되기도 한다. 자유자재로 눈빛 연기를 선보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준익 감독이 따로 디렉션을 하지는 않았다. 이제훈은 “원래 정확한 디렉션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언제나 배우가 하고자 하는 표현 방식을 다 받아주신다. 톤 조절 정도만 해주신다”고 설명했다.
감독이 배우를 믿고 가는 경우에 배우들은 대본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가 있다. 보통 시대극이 무겁기 때문에 애드리브 하기 어렵지만, ‘박열’은 유쾌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올 법도 하다. 이제훈은 “‘박열’은 무거운 이야기지만 한국 사람이 가진 해학과 유쾌함이 있다. ‘왕의 남자’처럼 사람들이 웃으면서 즐기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제훈의 애드리브는 박열답게 거칠게 나타났다. 극중 6천여 명의 조선인이 학살된 상황에서 조선인 한 명이 박열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일본 자경단이 박열 앞에서 조선인의 배를 찔러 죽이고 만다. 이제훈은 “대본상에는 박열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나는 욕을 해야겠더라. 저질러 버렸더니 감독님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며 “욕설 때문에 심의가 걱정됐는데 12세가 나왔다.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다만 박열은 누가 봐도 ‘센’ 캐릭터지만 그것이 왜곡되거나 과장된 모습은 아니어야 했다. 후미코의 자서전에 보면 ‘문체는 화려하지 않게’ ‘수식어는 배제하고 기록해 달라’고 부탁한 것처럼 ‘박열’은 이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제훈은 “정말 ‘가감 없이’ 연기했다. 과하게 표현될까봐 우려돼서 오히려 표현을 누그러뜨렸다. 내가 연기한 박열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봤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나를 다스리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박열’은 배우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작품이었다. 이제훈은 “이런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다시 연기할 수 있어요?’ 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단지 괴로움을 체험하고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남겨져서 나중에 누군가 영화를 볼 때도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했다. 때문에 매 순간 집중력도 상당했고 고민의 깊이가 여타 작품보다 강했던 것 같다”며 의무감을 드러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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