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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죽음 한 풀어주세요" 거리 나선 인터넷기사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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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죽음 한 풀어주세요" 거리 나선 인터넷기사 유족

입력
2017.07.0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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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계획된 범행…파의자 피해망상 내세워 선처 받으려 해"

슬픔 달랠 겨를 없이 거리서 서명받아…"사법기관에 엄중처벌 요구"

"인터넷 기사의 억울한 죽음을 아시나요.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 단죄 받아야 마땅합니다"

보름 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넉넉지 않았지만 단란했던 다섯 식구의 가정이 한순간에 풍비박산났다. 따뜻하고 든든한 가장이자, 80 노모를 극진히 모셨던 효자이기도 했던 50대 아버지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창졸지간에 닥친 비극에 온가족은 치를 떨었고, 넋을 잃었고, 아무리 부정해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주저앉았다.

지난 16일 인터넷 수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방문한 원룸에서 느닷없이 휘둘러대는 고객의 흉기에 목숨을 잃은 인터넷 기사의 23살 된 딸은 그러나 슬픔을 달랠 여유도 없이 아버지를 잃은 지 보름 만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거리로 나섰다.

아버지를 어떻게 보내드렸는지도 모르게 지난 21일 황망한 장례식을 치른 지 채 열흘이 안 돼서다.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피의자의 피해 망상 증세가 부각되면서 그가 법정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딸은 하루에도 몇번씩 쏟아지는 눈물만 훔칠 수만은 없었다.

지난달 30일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충북 충주의 도심 한복판.

50대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인터넷 기사의 딸인 A씨가 '인터넷 기사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손팻말을 세워놓고 행인들을 향해 탄원서에 서명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A씨는 "탄원서 작성 부탁드립니다"라는 말과 함께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알렸다.

무관심하게 지나치기도 하고, 잠시 관심을 보이다 발길을 돌리기도 했지만 A씨는 개의치 않고 자리를 지켰다.

아직도 A씨에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A씨의 카카오톡 배경 화면에는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사진이 애처롭게 걸려있었다.

단란하게 네 식구가 함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A씨는 아직도 그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충북 충주의 한 원룸에서 인터넷이 느리다는 이유로 다섯 식구의 가장인 50대 인터넷 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피의자 A(55)씨가 20일 오후 현장 검증하러 범행현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 충주의 한 원룸에서 인터넷이 느리다는 이유로 다섯 식구의 가장인 50대 인터넷 기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피의자 A(55)씨가 20일 오후 현장 검증하러 범행현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 모두가 비슷한 처지라고 했다. B씨가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아직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린다고 그녀는 전했다.

"아버지가 끔찍하게 모셨던 80대 할머니 역시 한동안 쓰러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슬픔이 목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A씨는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C(55)씨의 피해망상 증세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집중 부각된 것이 우려스러웠다. 그의 흉폭한 범행이 제대로 단죄받지 못할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처럼 선량한 시민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에 대해 사법부가 엄벌해야 한다고 A씨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조사하면서 C씨가 과도한 피해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C씨는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집을 나설 때마다 흉기를 지니고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C씨를 면담한 경찰 프로파일러 역시 "C씨는 인터넷 업체가 고의로 자신을 해코지했다는 생각을 해오다 숨진 피해기사를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로 나선 A씨는 "사전에 집에 흉기를 준비하는 등 명백하게 계획적인 범행을 저질러놓고도 피의자가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해 우발적 살인이나 정신이상 증세가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은 C씨를 엄중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은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경찰로부터 이 사건을 넘겨받은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C씨의 피해망상 증세와 관련,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정신감정 의뢰를 검토했다.

이를 위해 검찰은 법원에 신청해 C씨의 구속 기간을 연장했다.

정신감정이 필요한 경우 병원이나 치료감호시설인 국립법무병원(옛 공주치료감호소)에 신병을 유치한다. 이 기간에는 구속 집행이 정지된 채 정신감정을 받는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나 "지금까지 피의자를 조사한 결과 정신 이상자 수준까지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신감정을 의뢰하지 않고 내주 정도 기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6일 오전 11시 7분께 충주시 자신의 원룸에서 인터넷 점검을 위해 방문한 수리기사 B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로 C씨를 구속,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숨진 인터넷 수리기사 B씨는 아내와 80대 노모, 대학교에 다니는 A씨 등 2명의 딸과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성실하게 살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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