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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학들 이제 숫자 놀음 좀 그만하자

입력
2017.06.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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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보 대학평가 ○○위, 서비스품질 교육 부문 ○년 연속 ○위, 사법고시 ○명 합격, 행정고시 ○명 합격 등. 대학 정문에 내걸린 현수막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역량과 성과, 행복 등을 숫자로 표현하고 순위를 매기는 데 익숙해졌다. 숫자로 표현되고 순위가 매겨지지 않으면 가치를 두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불신일 것이다. 어떠한 잣대로든 성과를 측정하고 평가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부패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평가 대상에 적용될 수 있고 계량화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찾다 보니, 그 과정에서 평가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계량화하기 힘든 역량, 성과, 기여 등은 무시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기 위해 출발선에 서는 그 순간부터 원하든 원치 않든 평생을 순위에 얽매여 살아간다.

대학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인용색인(SCI)과 사회과학인용색인(S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이나 게재했는지, 연구과제를 얼마나 수주했는지를 기준으로 교수를 평가한다. 그들이 저술한 책과 논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멘토로서 학생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식인으로서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과 방송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국내외 언론에서 매년 발표되는 대학 평가에서 몇 단계라도 순위가 하락하는 날에는 학교 전체가 초상 분위기다. 그리고 대학은 서둘러 교수들의 인사 기준이 되는 논문 편 수와 과제 수주액의 기준을 높여 차년도의 순위 상승을 꾀한다.

모든 대학은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을 보면 여전히 2차 산업혁명의 틀 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인위적 교과과정 개편, 교원 인사 요건 강화 등을 통해서 보다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에 대학 평가 순위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차 산업혁명의 틀 속에서 만들어진 대학 평가 기제 속에서 더 나은 평가를 받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논문 몇 편 더 게재하고 연구비 수주액 몇 푼 더 늘리는 것보다 과감히 대학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 교육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2차 산업혁명 이후, 분업화한 각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대량으로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오늘날의 교육기제는 더 이상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40, 50년 전의 대학 성적표와 오늘날의 대학 성적표를 비교해 보면 전공명도 과목명도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그리고 대학 순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변화의 속도가 가장 느린 영역이 대학 사회가 아닐까? 대학의 운영 주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보직 임기 중에 대학 평가에서 순위가 하락하는 것을 감수하고 새로운 틀을 마련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대학은 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 평가의 목적은 평가 체계를 기반으로 대학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학계의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여 교육과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함일 것이다. 대학을 평가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언론도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미래 지향적 평가체계를 제시하지 못하면 평가를 접어야 한다. 대학들이 추구하는 자율적인 특성화에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권력화된 각종 교육프로그램 인증제도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뛰면 1등은 한 명이지만 360도 모두 다른 방향으로 뛰면 360명이 1등을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많은 1등을 키워 내는 대학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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