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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4년마다 한달 호텔서 회복 휴가… “근로자 건강이 곧 회사의 미래”

입력
2017.06.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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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한 생활하는 독일 관제사 로터씨

비용도 회사 부담… 복귀 땐 가뿐

독일 한 공항의 관제탑.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일 한 공항의 관제탑.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독일 뮌헨공항에서 관제사로 근무하는 옌스 로터(39)씨는 2~3일마다 밤낮이 바뀌는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 독일에서 2번째로 복잡한 공항인 뮌헨공항은 하루 1,100여 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며, 6명씩 3개 조가 24시간 관제탑을 지킨다. 관제사들은 오전 5시45분~오후 1시15분에 근무하는 오전조, 오후 3시30분~10시45분 오후조, 오후 10시30분~오전 6시 야간조 근무를 돌아가면서 한다. 10일 뮌헨에서 만난 로터씨는 “낮 근무를 이틀 하다가 밤 근무를 하면 잠들기가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비행기 이착륙을 관리하는 일이다 보니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스트레스가 큰 로터씨는 3년 8개월마다 1개월씩 ‘힐링 프로그램’을 갖는다. 회사가 호텔을 빌려 한 달 동안 온전히 로터씨의 힐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낮에는 요가ㆍ스포츠 프로그램 등 로터씨에게 특화된 맞춤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로터씨는 “회사에서 근로자별로 스트레스를 측정해서 회복휴가를 보낼 주기를 정한다”며 “2주 정도 힐링 프로그램을 하다보면 몸과 정신이 회복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3년 8개월마다 1개월씩 힐링 프로그램을 갖는 관제사 옌스 로터(뒷줄 오른쪽)씨와 가족. 뮌헨=박재현 기자
3년 8개월마다 1개월씩 힐링 프로그램을 갖는 관제사 옌스 로터(뒷줄 오른쪽)씨와 가족. 뮌헨=박재현 기자

독일에서 번아웃은 병으로 간주된다. 독일 루드비히샤펜에 위치한 화학업체 바스프의 직원들은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워크앤라이프센터를 찾는다. 워크앤라이프센터는 근로자들의 건강과 근무환경은 물론, 일ㆍ가정 양립을 총괄 관리하는 바스프 내 조직이다. 2016년에는 5,600여명의 직원이 이 센터에서 심리치료와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번아웃으로 진단한 직원은 그날 바로 병가를 보낸다. 진단에 따라 병가 기간이 달라지는데 최대 42일 동안 유급 병가가 보장된다. 복귀할 때는 의사와 해당 직원의 상관이 회의를 갖고 노동시간, 근무환경 등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 필요한 경우 환경을 개선한다. 시빌레 외스트라이혀 워크앤라이프센터장은 “일을 많이 해 걸린 병이니 회사가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직원들의 건강은 곧 일의 효율과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약 휴가기간 중 질병 등으로 아프면 그 날짜만큼 추가 휴가를 제공한다. 크리스티앙 지엔틀 바스프 홍보팀 직원은 “휴가 중에 아팠다고 해도 회사 업무의 영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진단서만 제출하면 휴가를 더 준다”고 설명했다.

독일 바스프 워크앤라이프센터의 가족 사무실. 직원들은 필요할 때마다 이 사무실을 예약해 자녀를 돌보며 일을 할 수 있다. 바스프 제공
독일 바스프 워크앤라이프센터의 가족 사무실. 직원들은 필요할 때마다 이 사무실을 예약해 자녀를 돌보며 일을 할 수 있다. 바스프 제공

‘근로자의 건강이 곧 회사의 이익’이라는 독일 기업의 인식은 구체적인 연구사례들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 2006년 독일 정부 산하 직업안전건강청(BAUA)은 ‘토니 머스터만’이라는 종업원 20명의 인쇄업체를 대상으로 사례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2년 간의 실험 결과, 주기적인 의사 진단과 상담으로 직원 병가율을 9.5%에서 7%로 낮추자 총 근로시간이 첫 해에 2,660시간, 두 번째 해에 1,960시간 많아졌고, 야근은 줄면서도 약 2만4,500유로(약 3,100만원)의 이익이 발생했다. 직원들의 건강이 생산성을 높이고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최장 시간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은 건강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다. 지난해 6월,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 주당 40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는 근로자 1,575명을 조사한 결과 근로시간과 질병은 비례해 나타났다. 주당 근로시간이 51시간 이상인 근로자들은 주 40~50시간 근로자들에 비해 불안증상 47%, 우울 34%, 번아웃 28.6%, 스트레스 지수 13.8%가 더 높았다.

외스트라이혀 센터장은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면 부서, 회사가 흔들립니다. 회사가 잘 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게 노동자의 건강이에요. 건강한 직원이 곧 건강한 회사를 만듭니다”라고 강조했다.

뮌헨ㆍ루드비히샤펜=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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