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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응찰 수모에서 데뷔전 결승 홈런…이런 드라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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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응찰 수모에서 데뷔전 결승 홈런…이런 드라마는 없었다

입력
2017.06.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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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황재균이 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린 콜로라도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솔로 홈런으로 신고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P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 황재균이 2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린 콜로라도전에서 데뷔 첫 안타를 솔로 홈런으로 신고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P 연합뉴스

‘응찰 구단 없음.’

메이저리그 진출 꿈을 키운 황재균(30ㆍ샌프란시스코)은 2015년 12월5일 기초군사 훈련을 받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빅리그 문을 두드렸지만 30개 팀 중 어느 팀도 응찰액을 적어내지 않았다.

모욕적인 상황이었음에도 황재균은 빅리그 진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년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 미국 현지로 떠나 메이저리그 구단을 대상으로 쇼케이스를 열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과 다시 마주했다. 관심을 보인 구단은 샌프란시스코가 유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시 받은 계약 조건 역시 빅리그 보장이 아닌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소속에 따라 연봉에 차이를 두는 계약)이었다.

황재균은 꿈을 위해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했다.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단 한 타석이라도 서보고 싶다”는 그는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빅리그 개막 로스터 진입에 모든 것을 걸었다. 27차례 시범경기에서 타율 0.333(48타수 16안타) 5홈런 15타점으로 무력시위를 했다. 빼어난 활약에도 구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국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게 됐지만 황재균은 씩씩했다.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 새크라멘토 리버캣츠의 새 동료들과 찍은 단체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최고다. 이 선수들과 시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마음을 다잡은 황재균은 트리플A 68경기에서 타율 0.287 7홈런 44타점을 기록하며 꾸준히 뛰었다. 그런데 자신과 성적이 별로 차이가 없는 경쟁자들이 하나 둘 빅리그로 승격되는 모습을 보면서 상실감에 빠졌다.

황재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옵트아웃’(잔여 연봉을 포기하고 FA를 선언하는 것)을 행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른 구단의 부름을 기다리겠다는 뜻이었지만 현실은 국내 복귀가 유력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은 ‘노동력 착취’ 로 미국 법정에 오를 만큼 힘들고 열악하다. 황재균 역시 심신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오기까지 총 네 차례 시련을 겪은 그가 모든 걸 내려 놓은 순간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를 28일 빅리그로 불렀고, 29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AT&T 파크에서 열린 콜로라도와 홈 경기에 곧바로 5번 3루수로 출전명단에 올렸다. 시범경기 때 달았던 ‘등번호 1’이 새겨진 유니폼을 다시 입은 그는 1과 인연이 있는 것처럼 데뷔 첫 날 첫 안타를 결승 홈런으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또 수훈 선수로서 인터뷰하며 미국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닷컴은 “영웅을 환영한다”고 했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지 더 머큐리 뉴스는 “빅리그에서 뛰는 꿈을 실현하기까지 그의 야구 인생 전체와 트리플A에서 3개월이 걸렸다”고 전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홈런을 터트린 황재균이 자신의 빅리그 첫 홈런볼을 공개했다. 황재균 인스타그램 캡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홈런을 터트린 황재균이 자신의 빅리그 첫 홈런볼을 공개했다. 황재균 인스타그램 캡처

황재균의 마수걸이 홈런은 세 번째 타석에서 나왔다. 2회 첫 타석에서 3루수 땅볼, 4회 1ㆍ3루에서 투수 땅볼로 첫 타점을 신고한 황재균은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후 상대 선발 카일 프리랜드의 시속 145㎞ 직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를 터뜨렸다. 맞는 순간 투수가 고개를 숙일 만큼 홈런을 직감하게 만든 큼지막한 한 방이었다. 데뷔전에서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구단 사상 황재균이 17번째다. 8회 네 번째 타석에서는 삼진으로 물러나 4타수 1안타(1홈런) 2타점으로 경기를 마쳤고, 팀이 5-3으로 이겨 황재균은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황재균은 이날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홈런사도 새로 썼다. 최초로 데뷔 전에서 홈런을 가동했고, 최소 타수(3) 홈런 기록도 갈아치웠다. 종전에는 지난해 박병호(미네소타)가 4월9일 캔자스시티전에서, 이대호(롯데)가 시애틀 소속으로 같은 날 오클랜드전에서 데뷔 세 번째 경기 만에 솔로포로 홈런을 터뜨렸다. 최소 타수 기록은 2016년 이대호의 5타수였다.

황재균은 경기 후 “정말 한 경기라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어 미국에 건너 왔는데 그게 오늘 이뤄져 너무 기분 좋다”며 “그 경기에 결승 홈런을 쳐 믿기지 않고 꿈만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부터 ‘배트 플립’(홈런 후 방망이 던지기ㆍ일명 빠던)으로 유명세를 탔던 황재균은 이날 홈런 타구를 날린 후 방망이를 ‘살며시’ 내려 놓고 베이스를 돌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배트 플립을 금기시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황재균은 “몸에 맞는 공을 원하지 않는다”고 웃었다. 하지만 미국 CBS스포츠는 기대했던 ‘빠던’이 나오지 않자 “아쉽게도 황재균이 괴물 같은 배트 플립을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한국에서 배트 플립의 왕이라고 불렸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자제하는 것 같다. 실망이다(Lame)!”라고 익살스럽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당분간 3루 자리를 보장 받은 황재균은 7월1일부터 시작하는 피츠버그 원정행 비행기를 탄다. 송재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주전 3루수 에두아르두 누네스가 피츠버그 원정 때 부상을 털고 복귀 하더라도 황재균이 (빅리그에)먼저 올라와 안타를 치지 못한 라이더 존스 보다는 우위에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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