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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명 집단 장기기증 서약…아주 특별한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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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명 집단 장기기증 서약…아주 특별한 동창회

입력
2017.06.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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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졸업 50주년 기념행사

“명문고 자부심 누렸으니 베풀자”

참가자 절반 이상, 사후기증키로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경기고 63회 동창회 50주년 기념식 참가자들이 13일 장기기증서약서를 쓰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경기고 63회 동창회 50주년 기념식 참가자들이 13일 장기기증서약서를 쓰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졸업 50주년인데, 여행만 가고 말 거야?”

서울 강남구 소재 경기고 63회 동창회장 홍석교(68)씨는 졸업5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지난해 초부터 몇몇 동창과 ‘의미 있는 동창회’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고교 졸업 후 반세기 동안 수많은 동문들이 정계 재계 등으로 진출한 덕에 ‘명문고’란 간판 아래 자부심도 충분히 누려왔으니, 동창회를 즈음해 함께 사회에 베풀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잔 이유에서다.

아프리카에 가 난민을 돕자는 의견부터, 장학회 또는 후원회 조성까지 아이디어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대부분 ‘실현 가능성’이 떨어졌다. 홍 회장은 28일 “친구들이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도 은퇴한 상태라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아 슬프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동창 대부분이 올해를 전후해 칠순 잔치를 치르는 마당에, 아프리카를 다녀오자니 체력도, 시간도, 돈도 축날 게 뻔했다. 이런저런 부담으로 참여율이 떨어진다면 안 하니 만 못 할 노릇. 후원회나 장학회 조성의 경우, 자칫 각자 형편에 따라 부담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올해 초 한 동창으로부터 묘안이 나왔다. ‘사후 장기기증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홍 회장은 무릎을 탁 쳤다. 죽은 뒤에도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인데다, 재산이 많건 적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에서다.

물론 걱정이 없던 건 아니다. 아무리 사후기증이라지만 ‘몸에 칼 대는’ 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국내 정서 때문. 본인은 괜찮다고 해도 가족이 반대할 수 있는 일이라 강요할 순 없었다. 결국 동창들은 동창회 당일 장기기증설명회를 갖고, 개인 판단에 따라 서약하기로 했다.

제50회 동창회가 열린 지난 13일, 행사장인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선 “몇 십 명 하면 다행”이라 생각했던 홍 회장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행사참가자 180여명 중 절반이 넘는 102명이 장기기증을 서약한 것. 여기엔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이상철(69)씨 등 사회 지도층이라 할만한 동창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설명회를 진행한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이, 사후각막기증을 설명하며 ‘몸에 칼 대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해 다들 겁을 덜 먹은 것 같다”며 높은 참여율의 이유를 밝혔지만, 본부 관계자는 “각막기증뿐만 아니라 뇌사장기기증 서약자도 상당수 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본부에 따르면 국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전 국민의 2.5% 수준으로, 미국(53%)이나 영국(33%) 등 해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실정이다. 연간 환자 1,200명 가량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목숨을 잃고 있단다. 홍 회장은 “이번 동창회를 통해 장기기증 실천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며 “앞으로 고교 선후배들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장기기증 동창회’를 적극 권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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