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28일 해외 방문에 나섰다. 미국 의회 연설도 생략된 3박 5일의 실무방문이지만 논의해야 할 의제의 범위와 내용은 무거워 보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 유보, 오토 웜비어의 사망,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문정인 ‘교수’의 발언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의 정상회담이다. 문 대통령은 한미 현안과 관련된 각종 자료 등을 숙지해야 하는 부담과 함께 성공적으로 외교무대에 데뷔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클 것이다.
지금까지 ‘정상회담이 실패했다’는 보도자료는 없었다. 회담이 끝나면 양 정상이 활짝 웃는 사진과 함께 ‘회담이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여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배포될 것이다. 이런 외교적 수사가 아닌, 실제 성과가 있길 바란다.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좌해 해결해야 할 개별 사안 모두 우리에게는 절박하기 때문이다.
첫째, 북핵 문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북한이 더 이상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를 멈추는 핵 동결이 시급하다”며 “1단계 동결, 2단계 핵 폐기 접근을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제재와 압박에 대화라는 메뉴를 더해야 한다”며 대화의 조건과 내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미국 조야(朝野)의 분위기는 웜비어 사망 사건으로 ‘격앙’되어 있다. 이를테면, 다수의 의회 지도자, 싱크탱크 전문가들에게는 김정은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독자적 대북제재에 앞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압박 강도를 더 높이는 방법을 취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22일 “유엔 안보리 결의 외에 다른 국가를 자국 국내법에 따라 독자제재를 하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청와대의 전략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둘째, 사드 배치 문제다. 이는 한미동맹의 신뢰와 직결됨으로써 정치적 인화성이 높은 쟁점이 됐다. 워싱턴의 정책서클은 사드 배치를 미래 한미동맹의 방향과 깊이를 재는 척도로 간주한다. 사드라는 창문을 통해 본 풍경으로 한미동맹 전체의 풍경을 유추하려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백악관, 국무부에는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고위 정책결정자들이 전무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누구의, 어떤 한반도 관련정보가 입력되고 있는지도 베일에 가려져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두고 ‘수락이냐 거부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물음에 즉답할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다.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올릴 트위트 역시 읽을거리 중 하나다. 호사가들은 이번 첫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서 동맹(alliance)의 강화 또는 ‘하룻밤의 연애’(dalliance)로 규정하려 할 것이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든 문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이 화석화한 이념적 이분법이 아니라 국익에 따라 선택된 것임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올해는 1953년에 체결된 한미 방위조약 64주년이다. 문 대통령도 같은 해 태어났다. 비틀스는 “내가 64세가 돼도 당신은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할까?”라고 노래했다. 비틀스의 물음에 두 정상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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