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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건설 중단? 앞으로 어떻게 정부를 믿고 일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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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건설 중단? 앞으로 어떻게 정부를 믿고 일하겠나”

입력
2017.06.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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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한 과정 거쳐 결정된 사업

靑이 뒤집을 수 있다는 선례 남겨

“공식 절차 밟는 방법은 없었나”

‘건설 위한 명분 쌓기’ 분석도

“일단 공사 멈추고 검토한단 의미”

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탈원전 정책은 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라는데 많은 국민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서 적법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 국책 사업을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이 갑작스럽게 재검토하겠다고 나서는 건 법 절차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거세다. 에너지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정부를 믿고 일하겠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차 무시’이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는 지난해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최종 의결했다. 여러 차례 회의와 치열한 논쟁 끝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출한 건설허가 안을 표결에 부쳐 위원 9명 중 7명이 찬성했다. 가장 큰 논란이 된 사안은 원전 밀집의 위험성이다. 신고리 5ㆍ6호기 부지인 울산 울주군 서생면과 인근 부산 기장군 장안읍 일대가 기존 원전 8기와 함께 총 10기가 몰려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원안위 위원들은 의결과 함께 밀집된 원전의 안전을 엄격히 관리하도록 주문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공식 절차를 밟는 방법은 없었나”라고 묻고 있다. 원안위는 국내 원자력 안전규제 분야의 최고 의사결정 조직이다. 여기서 내린 결정에 대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정책적으로 판단했더라도, 역시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원안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건설허가 취소 안건을 위원이 제기했을 때 위원장이 동의하면 회의에 정식으로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건설 일시 중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결국 원안위 결정을 청와대가 뒤집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고, 원안위 위상은 추락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참석해 “원안위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승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27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공사 현장. 5호기는 원자로 구조물 건설에 들어갔고, 6호기는 굴착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 돔 형태 건물은 상업운전 중인 신고리 3호기와 건설 중인 4호기다. 울산=뉴스1
27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 건설공사 현장. 5호기는 원자로 구조물 건설에 들어갔고, 6호기는 굴착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 돔 형태 건물은 상업운전 중인 신고리 3호기와 건설 중인 4호기다. 울산=뉴스1

또 다른 문제는 앞으로의 공론화 과정이다. 정부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최종 중단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해 3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인사들에서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를 제외하겠다고 못 박았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결국 시민단체 인사나 비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용어 이해조차 어려운 전문 분야 정책을 전문가는 배제한 채 논의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높다. 이미 에너지 분야에서 시민단체의 입김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가 공직 사회에서조차 나오는 상황이다. 에너지 정책 업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일부 환경단체는 새 정부의 특정 보직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신고리 5ㆍ6호기는 현재 공정률 약 28%다. 5호기는 원자로와 터빈건물의 구조물을 짓고 있고, 6호기는 기초 굴착 단계다. 총사업비 8조6,000억원 가운데 4조9,000억원이 관련 업체들과 계약됐고, 이 중 1조6,000억원은 이미 지급됐다. 최종 건설 중단이 결정된다면 공기업인 한수원은 물론 해당 업체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 국민 부담이 된다. 이날 정부는 신고리 5ㆍ6호기 공사가 최종 중단될 경우 기존 집행된 1조6,000억원과 보상 비용까지 합쳐 총 손실 규모가 약 2조6,000억원에 이를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수원은 “실제 손실 규모는 아직 정확히 추정조차 어렵다”는 입장이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에 520억원 어치의 부품을 납품했다는 한 중소기업 부사장은 “정부와 한수원이 계약해놓고 어떻게 하루아침에 건설을 중단할 수 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국책 사업을 갑자기 ‘없던 일’로 만들기엔 정부로서도 부담이 클 거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결국 정부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지속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근거다. 지난 2일 국정기획위원회가 “문 대통령의 공약집에 명시된 ‘신고리 5ㆍ6호기 공사 중단’은 건설 자체를 중단하는 게 아니라 일단 공사를 멈추고 검토해보겠다는 의미”라며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는 듯한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황주호(경희대 교수) 한국원자력학회장은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찬반 양측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설명하고 의견을 낼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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