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26일 갑작스레 ‘좋은 일자리 창출 모범사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놨다. ‘일자리 정부’의 기조에 기업과 노동계가 적극 호응하면서 새 정부 출범 후 무려 12만명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나타났다는 자화자찬이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후 민간기업이 채용하겠다고 밝힌 신규 일자리가 8만8,000명, 민간ㆍ공공부문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비정규직 3만4,000명 등 모두 12만2,000명이 일자리 혜택을 보게 된다. 국내 실업자수가 꾸준히 100만명을 넘는 ‘100만 실업자 시대’가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들려온 단비 같은 소식이다. 특히 민간기업의 신규 채용 모범사례로 롯데그룹(향후 5년간 7만명)과 신세계그룹(올해 1만5,000명), 현대백화점(올해 2,600명)이 소개되면서 향후 채용시장에 훈풍이 불 것으로 기대됐다. 이용섭 부위원장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분들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이들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하나 하나 뜯어본 12만2,000개 일자리의 실상은 매우 실망스럽다. 일자리 창출의 선봉장으로 꼽힌 롯데와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의 채용 규모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줄어든 수준이다. 전체 일자리 창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롯데그룹의 경우 당장이 아니라 향후 5년간 7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구두 약속’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그 규모 또한 지난 5년간 채용(총 7만5,000명)을 밑도는 수준이다. 신세계그룹이 밝히는 올해 채용 규모 역시 작년과 동일한 수준이며, 현대백화점도 지난해(2,500명)에 비해 고작 100명이 늘었을 뿐이다. 신규채용 숫자에 직접 고용인원이나 정규직 비율 등이 명시되지 않아 늘어나는 일자리의 질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포함시킨 사례도 있었다. 정규직 임금 동결을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하청업체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한 KB국민카드의 경우 정작 노조에서는 합의된 내용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모범사례로 페퍼저축은행(90명) 등 소규모 기업들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어떻게든 효과를 부풀려 보겠다는 의도가 읽혀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들고 기업의 일자리 상황도 점검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일자리위원회의 이 같은 행보는 채용 독려 차원에서 효과가 있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수치 집착은 과당 경쟁과 나쁜 일자리 양산 등의 부작용만 키울 공산이 크다. 이용섭 부위원장은 앞서 "정부가 속도전을 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있는데, 서민의 아픔을 생각하면 느긋하게 갈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 실망과 혼란을 키우지 않으려면 당장의 조급증을 버리고 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 상황판에 올라갈 숫자로만 접근한다면 과거 정부의 실패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를 귀담아 들을 때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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