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수현(29)을 커다란 스크린에서 보는 게 꼬박 4년 만이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이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ㆍ2014)와 ‘프로듀사’(KBSㆍ2015)로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스크린을 오래 비웠다. 김수현도 갈증이 났는지 영화 ‘리얼’(28일 개봉)에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20대의 대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김수현은 “배우에게 주어지는 숙제가 많은 작품일수록 강하게 끌리더라”며 ‘리얼’과의 첫 만남을 돌아봤다. 이 영화에서 그가 소화한 ‘숙제’는 액션과 스릴러, 드라마, 멜로 등 전 장르를 망라한다. ‘투톱 주연’도 그의 몫이었다. 1인 2역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1인 3역으로도 해석 가능한 고난도 캐릭터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다소 난해하다. 대형 카지노 보스 장태영(김수현) 앞에 이름과 외모가 똑 같은 의문의 투자자(김수현)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면서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혼돈 속으로 관객을 몰아넣는다. 장면구성은 세련되지만 선명하지 않은 서사로 인해 언론시사회에선 고개를 갸웃하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김수현은 애써 해명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처음 영화를 보면 강렬한 장면들에 시선을 빼앗기게 돼요. 그러다 함정에 빠지고 해석이 틀어지기도 하죠. 저도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인물 관계를 전혀 다르게 파악했어요. 하지만 실타래의 끝과 끝을 찾아내면 이야기가 엉키지 않아요. 숨겨진 힌트들도 흥미롭죠.”
동명이인 장태영은 마스크 착용 유무로도 구분되지만 무엇보다 대화 톤에서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카지노 보스 장태영은 눈빛과 목소리로 상대를 잡아 가둔다는 느낌으로, 투자자 장태영은 관객들이 ‘재수없다’고 느끼게끔 목소리를 늘어뜨려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희한하죠. 두 사람이 맞붙는 장면에서 투자자 장태영을 먼저 연기하면 카지노 보스 장태영의 목소리 톤이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김수현은 “20대에 습득하고 느끼고 만들어낸 모든 것을 ‘리얼’에 쏟아 부었다”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감정을 아끼는 연기를 했다면 이번엔 모조리 발산했어요. 한마디로 저를 하얗게 불태웠죠. 이 영화를 다시 찍으라고 하면 지금보다 ‘못할’ 자신만 있어요.”
‘리얼’로 마무리 지은 20대를 돌아보던 김수현의 목소리는 어느새 조금 낮아졌다. 짧은 시간에 한류스타로 구름 팬을 몰고 다녔고, 그런 인기를 시샘할 수도 없게 연기력에서도 독보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인간 김수현’과는 멀어지게 됐다는 뜻밖의 고백이다.
“사람들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이게 돼요. 본래 제 모습에서 불리한 것들을 덜어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점점 제가 망가지는 듯했어요. 주변 사람들의 특별한 배려가 어느 순간 당연해지기도 하더군요. ‘연예인 김수현’이 ‘공주님’이 돼 가고 있던 거죠. 겉으로는 빛나도 속으로는 많이 괴로웠어요.”
우리 나이로 “서른 살 6개월차”를 맞으며 그는 조금 편안해졌다. ‘인간 김수현’과 ‘연예인 김수현’의 거리도 많이 좁혀졌다. 나이가 준 여유다. “아직은 ‘공주님’을 극복하고 있는 과정이에요. 30대엔 더 많이 여유로워지고 용감해져서 ‘인간 김수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면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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