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최근작에서 두드러지는 화두는 단연 먹거리다. 그는 2013년에 선보인 영화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를 갈아 만든 ‘양갱’(단백질바)으로 미래의 먹거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더니, 오는 29일 공개될 신작 ‘옥자’에선 유전자 조작으로 키운 슈퍼돼지 옥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먹거리의 이면을 정면으로 들춘다. 특히 ‘옥자’에선 단순히 재료의 문제를 넘어 어떤 과정을 통해 음식이 우리 밥상에 올라왔는지를 다큐멘터리처럼 꼼꼼하게 비춰 충격을 준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쓴 저서 ‘육식의 종말’을 읽고 감화라도 받은 것일까.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봉 감독을 만나 식생활에 대해 그가 고민하게 된 계기를 들었다. 극장과 온라인 동시 공개로 인한 주요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넷플릭스와 손잡고 ‘옥자’를 만들려고 한 속내까지.
-먹거리 문제에 집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 영화에 먹는 장면과 먹는 얘기가 많다. 우리가 하루에 세 끼를 먹지 않나. 우리가 하루에 책을 세 권 읽거나, 세 번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거나, 세 번 성관계를 맺을까. 먹거리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뜻밖에 그에 대한 고민은 덜했던 것 같다. 과거엔 인류가 모든 음식 소비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했다. 어떻게 자라는지 보며 수렵을 하거나 혹은 직접 길러 먹었으니까. 그런데 점점 그 과정에서 우리가 멀어졌고,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먹거리 소재로 동물을 끌어온 이유는.
“평소 동물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실제로 SBS ‘동물농장’을 즐겨본다. 애완견을 키우고 있기도 하고. 우리가 동물과 산 지도 오래됐다. 동물은 우리에게 친구이자 가족이다. 그런데 집에서 반려견이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린 정작 밥상 위에선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밥상 위, 아래 다 동물이 있는데 편의로 그걸 분리한다. 팩에 담겨 포장된 건 식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동물에 대한 인간의 기준이다. ‘옥자’는 사실 그들은 하나의 존재라는 걸 불편하게 합쳐 그로 인한 우스꽝스러운 소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이유로 ‘옥자’를 본 이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겠다고 한다.
“나도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도축장을 다녀온 뒤 두 달 동안 고기를 못 먹었다. 고깃집에 가면 쟁반에 담겨 고기가 나오는데, 피가 출렁이는 걸 보니까 못 먹겠더라.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몇 달 있으면 다 먹게 되더라(웃음).”
-미국에서 직접 본 도축장의 경험이 꽤 충격이었나 보다.
“압도적이었다고 할까. 잠실주경기장 4~5배 정도의 규모였다. 파이프 라인을 통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봤다. 보통 공장은 조립의 공정을 거치는 데 이곳은 철저히 분리의 과정을 거치더라.”
-’육식의 종말’을 외치는 건가.
“육식이 문제가 아니다. 반대하지도 않고. 동물도 동물을 먹는다. 자연 속에서 혹은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한 육식은 문제 없다. 과정이 중요하다. 공장식 양육 과정의 비극을 짚고 싶었다. 공장에서 길러진 돼지는 금속 틀에 갇혀 꼼짝도 못 하고,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닭은 A4용지만한 공간에서 평생 알을 낳다 알을 낳지 못하면 바로 죽임을 당한다. 고기를 먹는 건 생명을 이어 받는 행위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미국 인디언들도 동물에 대한 존경을 표한 뒤 동물을 잡아 먹는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의 밥상에 올려지기까지 먹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옥자가 정말 귀엽더라. 목소리를 배우 이정은이 맡아 화제다.
“영화 ‘마더’에서 같이 작업했다. 뮤지컬 ‘빨래’를 봤는데 할머니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정말 자연스러워 놀랐다.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저렇게 제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 분(이정은)이라면 옥자의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옥자가 감정을 표현할 때 내는 소리는 이정은이 낸 소리를 녹음해 썼다. 헉헉대는 돼지의 실제 소리는 뉴질랜드 돼지 소리를 따와 쓴 거고.“
-배급을 둘러싼 논란으로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스포일링이 덜 돼 좋은 면도 있다. 지난 5월 제작발표회부터 프랑스 칸을 지나 이번 국내 인터뷰까지 기술이나 배급 문제로 영화가 계속 화제가 됐으니까(웃음).”
-넷플릭스와 손잡은 이유로 창작의 자유를 꼽았다.
“‘옥자’는 5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든 영화다. 아시아나 유럽의 제작사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정작 미국도 제작비가 350억원 이상이 되면 감독들에 전적으로 편집 권한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명 감독인 J도 계약을 맺을 때 편집에 대한 권리를 A사에 넘겼고. 그런데, 난 ‘디렉터스컷’(감독이 100% 편집한 영화)이 아니면, 미쳐버리는 스타일이다(웃음). 실제로 한 제작사를 만났을 때 영화 속 두 장면을 빼버리거나 바꾸자는 요구를 해 거절했다. 한 줄도 바꿀 수 없었다. 넷플릭스만이 지켜줬다. 극장 개봉 문제에 대한 논란을 예상했지만, 창작자로서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는 길은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영화 매체의 미래나 배급 문제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자 실험을 한 건 아니다.”
-작은 화면으로도 ‘옥자’를 봤을 텐데, 어떤가.
“당연히 큰 화면이 좋다. 극장에서 보는 것이 가장 좋고 집에서 보더라도 대형TV를 권하고 싶다. 극장의 스크린을 기준으로 영화를 찍었으니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제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는 안 봤으면 좋겠다. 강원도 산골에서 찍은 장면 중 롱샷으로 잡은 게 있어 만약 작은 휴대폰으로 보면 인물이 점처럼 보일 수 있다.”
-그 동안 너무 거대 서사만 다뤘다.
“기차(‘설국열차’)와 돼지(‘옥자’) 만드느라 각 4년을 썼다. 나도 지친다.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실제 ‘옥자’ 후 두 프로젝트가 모두 작은 영화다. 영화 ‘마더’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생충’은 100% 한국 영화다. ‘잉글리시 프리’(영화에 영어가 안 나오는)다. 시나리오도 한국어 대사로 쓰고 있고. 그래서 나도 너무 기대된다. 하반기에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내년 초에 촬영할 계획이다. 송강호 선배의 최종 출연 승낙을 기다려봐야 한다(웃음).”
- ‘옥자’ 개봉 후 어떤 순간이 기다려지나.
“영화 ‘서편제’도 작은 극장인 단성사에서 개봉했을 때 줄 서서 봤다고 하는데, 이거 내가 줄 서는 대행업자를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농담이고 ‘옥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시골의 50대 여성 관객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간이 남아 ‘옥자’를 봤는데 ‘이상한 동물이 나오는데 정말 귀엽더라’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옥자가 실제로 있는 동물인 줄 알고 ‘어느 나라 종이야?’라고 묻는다면 더없이 좋을 테고.”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