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길 전면 개방 첫날
환영 목소리 속 실망감 역력
일부 시위해 농성하려다 혼란도
“허탕치고 돌아가는 거지, 뭐.”
26일 청와대를 찾은 김모(76)씨 표정에 실망스러움이 가득했다. “반세기 만에 전면개방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멀리서 왔는데, 사실은 주간에 한정됐던 통행이 야간으로 확대된 것에 불과하단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도 떠들썩하기에 통행금지 구간을 개방하는 것으로 오해했다”는 김씨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하고 있더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30분까지 시민 통행이 제한됐던 청와대 앞길(춘추관부터 정문 앞 분수대광장을 동서로 잇는 구간)이 26일을 기점으로 24시간 개방된다. 이날 청와대 주변 검문소와 바리케이드는 철거됐고, 산책하는 시민이나 관광객에게 부담이 됐던 “어디 가십니까” 같은 질문도 사라졌다.
개방 첫날 청와대 앞길엔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평소보다 많은 시민이 몰렸다. 청와대를 처음 방문한 시민도, 종종 찾았던 시민도 “청와대 문턱이 낮아진 것 같아 좋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전면개방이라는 단어를 오해해 청와대를 방문한 일부 시민 사이에선 “전면개방이 아니라 ‘야간 개장’ 같은 표현을 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은 “열린 청와대를 구현하겠다”는 청와대 취지에 공감, 대부분 환영했다. 인근 주민 한모(50)씨는 “권위주의 탈피 신호”라며 “동네가 당분간 북적댈 것 같다”고 내다봤다. 명문대 탐방 중인 광주 동명고 관계자는 “청와대를 안 와본 학생이 많아 이번 기회에 구경시켜주고 싶어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찾아왔다”고 했다.
폐쇄됐던 공간을 개방한다고 오해한 시민들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인근 주민 박모(60)씨는 “점심 먹고 산책 삼아 종종 걷던 길인데 느닷없이 ‘전면개방’ 한다기에, 궁금해서 와 봤다”며 “경찰에 물어보니 ‘낮 시간에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하더라”며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광주에 사는 대학생 정모(21)씨도 “청와대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는 줄 알고 급히 올라 왔는데, 원래 통행 가능했던 구간이라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멋쩍게 웃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보다 시민들이 3배 가량 늘어난 것 같다”라며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냐’ ‘개방 구간이 어디냐’는 질문이 쇄도해 설명하느라 하루를 다 쏟았다”고 했다.
청와대 앞길을 농성 장소로 삼으려는 시위대와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에선 고성과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다.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1인 시위하던 한 시민은 길 건너 청와대 초입에서 농성하려다 경찰이 막아 서자 “다른 사람들은 다 돌아다니는데 나만 왜 못 가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청와대와 약 100m 떨어진 사랑채 옆 인도에서 농성하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역시 청와대 앞길로 건너가려다 제지 당하자 “우리도 똑같은 시민이다” “막아서 될 일이냐”고 격분했다.
경북 성주 주민들은 이날 오후 분수대광장에서 김정숙 여사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낭독했다. 사드 배치 반대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파란나비효과’에 출연한 성주 주민 김정숙씨는 “영화에는 문 대통령과 여사님이 알고자 하는 국민 삶이 담겨 있다. 꼭 보시고 국민 삶에서 함께 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