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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는 엄연한 문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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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는 엄연한 문학이죠”

입력
2017.06.2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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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김종삼의 ‘정원’ 등 너무나 좋아했던 우리 시들이 ‘외국 시의 베끼기’ 였다는 걸 알고 난 후 배신감”으로 패러디를 공부했다며 "표절과 패러디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정끝별 시인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김종삼의 ‘정원’ 등 너무나 좋아했던 우리 시들이 ‘외국 시의 베끼기’ 였다는 걸 알고 난 후 배신감”으로 패러디를 공부했다며 "표절과 패러디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다"고 말했다.

베낀걸 숨기면 표절이지만

의미 불어 넣으면 패러디

원작의 사회 역사적 맥락 담겨

패러디는 원작과 ‘혈연 관계’

남의 작품을 “베끼고 따오고 바꾸는 행위”가 “문학적 행위”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한국 현대시의 패러디 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시인 정끝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다. 1995년 이 논문을 쓴 후 문단에서 표절 논란이 일어 날 때마다 ‘심판관’으로 호출 받아온 정 교수는 1988년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을 모티프로 쓴 시 ‘칼레의 바다’로 등단한 ‘패러디 시인’이기도 하다. “문단에서 패러디하면 떠올리는” 그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시론집 ‘패러디’(모악 발행)를 냈다. 패러디의 정의와 조건부터 시대별 양상까지 간략하게 소개하며 우리 시에서 대표적인 패러디의 예를 소개한다.

최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정 시인은 “베끼는 행위를 작가가 어떻게 의식화하느냐에 따라 표절과 패러디로 나뉜다”고 말했다. 원전을 베끼고 따오고 바꾸는 행위를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숨기면 표절, 곧이곧대로 밝히면서 베끼면 인용, 베끼면서 원전을 재의미화하면 패러디다.

시대별로 패러디의 기준과 양상도 달라진다. 정 교수는 “90년대 중반 논문을 쓸 때 표절 기준은 지금과 달랐다”고 말했다. “상당히 많은 우리 근현대 시가 외국 시와 유사합니다. 인용과 표절과 패러디가 구분되지 않았던 거죠. 패러디라는 용어, 개념이 생긴 후에 표절의 기준은 더 엄격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패러디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문인이 황지우와 오규원이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김춘수의 시 ‘꽃’을 후배 시인들은 이렇게 다시 썼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왜곡될 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오규원 ‘꽃의 패러디’)

‘내가 꽃에게 다가가 ‘꽃’이라고 불러도 꽃이 되지 않았다. 플라스틱 조화였다.’ (황지우 ‘다음 진술들 가운데 버틀란트 러셀경의 ‘확정적 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정 교수는 패러디 작품들이 서로 의미를 보충하며 원작과 ‘혈연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한다. 패러디는 단순히 언어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자체적인 사회·역사적 맥락을 갖는다는 것이다.

황지우와 오규원의 시가 대세를 이루던 1980~90년대 시인들은 독자가 러셀의 ‘기술 이론’을 알아야 패러디의 맥락 알 수 있는 ‘엘리트주의’를 표방했다. 반면 ‘패러디 2세대’인 박정대, 황병승, 김경주 등은 미국드라마와 일본 만화, 게임 같은 오타쿠 문화의 언어를 베끼고 비튼다. 정 교수는 “원작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문화를 향유하는 게 이들 시의 특징”이라며 “2000년대 중반 미래파 논쟁을 일으킨 시들은 오타쿠 문화에서 언어를 가져와 바꾸는데, (문단) 어르신들이 (오타쿠 용어를) 한마디도 모르기 때문에 난해시, 환상시로 풀이됐다”고 주장했다.

“송승언, 김현, 주하림 같은 젊은 시인들이 ‘패러디 3세대’라 할 수 있어요. 패러디가 문화 전방위에 침투된 시대를 살아온 세대라 모방 대상, 패러디가 경계 없이 어우러진 시 세계를 펼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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