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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6월의 냄새

입력
2017.06.2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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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고독 여행 떠난 日스가 아스코

30년 전 아스팔트 최루탄 냄새 떨치고

개인의 고독을 이해하는 공동체 길로

가로수 길 냄새. 1954년 6월30일, 결국 에세이스트가 될 운명인 젊은 스가 아스코(須賀敦子)는 하숙집으로 돌아오다 가로수길 보리수 꽃향기를 맡는다. 그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향기를 맡고 목이 멘다는 것이 이런 걸까. 목이 메인 그녀가 그 향기를 글에 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였다. 중년을 훌쩍 넘긴 사람이 홀연히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대개 마주한 어두운 숲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닌가. 단테는 신곡에서 “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고 썼다. 비록 그 입구와 출구는 다를지언정, 누구나 예외 없이 한번쯤은 그 무서운 숲에 가게 된다. 그래서 스가 아쓰코는 자신만의 신곡을 쓰기 시작한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시집이나 가. 젊은 스가 아스코에게 당시 일본 사회는 이렇게 말했다. 반발심이 든 스가 아쓰코를 본격적으로 동요시킨 것은 생텍쥐페리의 문장이었다. “스스로 대성당을 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성된 대성당에서 편하게 자신의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1960년대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동양인 유학생이 아직 드물었던 그곳에서 스가 아스코는 사회변혁을 꿈꾸던 가톨릭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탈리아인 남편과 동지들을 만나, 함께 민주주의의 대성당을 짓기 시작한다. 성당 안에 구축한 요새와 같은 서점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에서, 그녀는 당대의 일본사회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던 동지간의 유대, 사랑, 그리고 결국 떨쳐지지 않는 이물감과 경이를 경험한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 스가 아스코가 속했던 가톨릭 공동체의 시인 다비드는 사회변혁운동을 시작하던 1945년 여름,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한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줄곧 나는 기다렸네/ 살짝 젖은/ 아스팔트의, 이/ 여름 냄새를/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네.” 그들이 바랄 수 있었던 것은, 파시스트의 더운 아스팔트를 식혀버릴 순간의 빗줄기, 그로부터 피어나는 여름 냄새뿐이었던 걸까. 다비드가 주도하던 사회변혁운동은 결국 실패하고, 변혁공동체는 해산하고,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은 문을 닫고, 스가 아스코의 남편은 병을 얻어 갑작스레 죽는다.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던 모든 것이 스러지고 나자, 스가 아스코는 한때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일본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죽기 십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에세이집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말미에서 스가 아스코는, 각자 가지고 있던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몰락해간 사회변혁운동의 과정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 덧붙인다, 꿈꾸었던 공동체의 몰락이 꼭 저주만은 아니었다고. “젊은 날 마음 속에 그린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

최루탄 냄새. 30년 전 6월 이 땅에는 보리수 꽃향기 대신 최루탄 냄새가 창궐했다. 시민들이 군사정권의 타도를 외친 끝에, 6월 29일 마침내 군사정권이 직선제 수용을 선언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은 실로 비가 뜨거운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피어오른 여름 냄새와도 같았다. 그로부터 이제 30년이 지났다. 여전히 구태를 답습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마저 30년 전의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스가 아스코에 따르면, 과거의 향기는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마법을 써서 돌아간다 해도 같은 향기를 반복해서 음미할 수는 없다. 이제 공동체는 개인의 고독을 인정한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더러움을 찾아 떠나는 무심한 로봇청소기처럼 앞으로 나아갈 때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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