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4시쯤 인천국제공항.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주변을 취재진이 둘러쌌다. 16일 미국 워싱턴 현지 세미나에서 그가 했던 “북한이 핵ㆍ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한반도에 전개된 미 전략무기를 축소할 수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등의 발언이 국내에서 파장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빌미는 문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라는 사실이다. 하필 한미 정상회담이 코앞인 때에 어떻게 대통령 특보라는 중책을 맡은 이가 경솔하게 발언할 수 있느냐는 것이 보수 진영의 힐난이다. 하지만 그는 “내 직업은 교수”라며 “자문(조언)을 받고 안 받고는 대통령 결정”이라고 기자들에게 쏘아붙였다.
이번 방미에 동행했던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서 문 교수를 ‘건축 설계사’에 빗댔다. 새 정부 외교ㆍ안보 정책 얼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예측도 가장 정확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리모델링을 하는 건 집주인인 문 대통령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특별한 임무를 띠고 전면에서 활동하기보다 자유롭게 조언하는 게 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 교수는 문 정부의 ‘막후 실세’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 구축에 깊숙이 간여한 데다 2000,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특별 수행원으로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어 정부와 학계에서 모두 실력이 인정된다. 대선 때도 문 캠프에 몸담지 않았지만 외교ㆍ안보 자문그룹의 좌장 역할을 했다. 이번에 곤욕을 좀 치렀다고 문 교수가 입을 닫거나 할 사람은 아니라는 게 그를 아는 이들의 공통된 평가다. 그의 워싱턴 발언이 틀린 말도 아니잖냐는 옹호적 시각도 적잖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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