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뭐라고 ‘선생님’이라고 불리나요.”
어색하게 웃는 얼굴이 “형이 솔직하게 말하면, 넌 노래에 재능이 아예 없어”라며 연습생에게 독설을 날리던 강렬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룹 SG워너비의 이석훈(33)은 4월 음악전문 케이블채널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프듀2’)에서 연습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다들 저보고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제발 형이라고 불러달라 했어요. 연예인이라는 말도 못 듣겠어요. 지금까지 저 스스로 연예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자신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 연예인이 아니란다. 그래서 누군가 사인을 부탁하면 부끄러워 종이를 책상 밑에 숨기고 써준다. 사진을 함께 찍자는 팬의 부탁에도 주춤하다 불편한 오해를 사기 일쑤다.
‘프듀2’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대중의 관심이 쏟아진 점이 “민망하다”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SG워너비의 멤버로 9년을 보낸 유명 가수다. 그는 15일 ‘선생님’의 옷을 벗고 4년 만에 솔로 앨범 ‘유 앤드 유어스’를 내놓았다. 19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석훈은 “옛날 노래의 감성을 살리려고 노력했다”며 “나야 늘 해온 스타일이지만, 비슷비슷한 음악들에 익숙해진 대중의 귀에는 제 노래가 새롭게 들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SG워너비로 지낸 9년… 창법이 바뀌다
2004년 ‘타임리스’로 데뷔한 SG워너비는 포크 풍의 발라드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13년간 활동했다. 느리고 지루했던 2000년대 이전의 발라드와 달리 미디엄 템포의 비트에 서정적인 노랫말에, 일명 ‘소몰이’ 창법(바이브레이션을 부각된 창법)으로 세련된 맛을 살려 인기를 누렸다.
이석훈은 2008년 엠넷미디어 오디션에서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SG워너비의 세 번째 멤버로 선발됐다. SG워너비가 이미 입지를 굳혀놓은 터라 모두 부러워하는 자리였다. 이석훈이 영입된 후 5집 타이틀곡 ‘라라라’가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지만, 이석훈은 그룹 활동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2010년 아이돌 가수의 후크송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발라드 음악에 대해 “천편일률적인 소몰이 창법”이라는 냉랭한 평가도 나왔다. SG워너비 음악의 본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SG워너비는 정통 발라드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좀 더 자연스럽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컨트리 스타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석훈도 자신의 노래를 돌아보고 진짜 제 목소리를 찾는 과정에 힘을 쏟았다. 좀 더 힘을 빼고 말하듯이, 기교보다 의미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이미 몸에 배인 창법을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엔 허스키한 목소리에 매료돼 있었어요. 일부러 목소리를 꾸몄는데, 멋있게는 들리지만 깊이가 없더군요. 어떻게 하면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말할 때 편한 목소리로 전달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프듀2’ 친구들을 가르칠 때도 제가 늘 요구한 건 ‘누군가를 따라 하지 말고 너의 목소리로 불러라’였어요. 한번 버릇이 들면 고치기 힘들거든요. 저처럼요.”
창법을 다듬고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수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역량이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강박과 스트레스로 데뷔 당시엔 없던 무대공포증까지 생겼다. 그는 “2012년부터 무대에 서면 극도로 긴장되기 시작했다”며 “SG워너비의 ‘내 사람’은 9년째 부르는 곡인데도 종종 긴장해 가사를 잊는다”고 고백했다. 무대공포증은 조금씩 극복 중이다. 부족함을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부족한 내 모습까지 좋아해야 더 오래 음악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도 노력을 이어가고 있어요. 언젠간 무대가 안방처럼 편해지겠죠.”
“유행 좇는 음악? 음악가는 고집이 있어야”
뒤늦게 SG워너비에 합류해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 ‘오늘은 어제보다 괜찮았지’ 등 솔로앨범도 발매하며 꾸준히 활동했지만, 노래만큼 이름을 크게 알리지는 못했다. 장기간 노래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활동을 자주 안 해서”라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운동화도 아껴 신으면 늘 새것 같잖아요. 잊을 만 하면 나오니 저와 제 음악이 새롭게 보이는 거죠. 대중이 저에 대해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큰 기대와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서” 음악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소신껏 만들어왔다. 외골수라는 일각의 시선도 있지만, “음악 유행은 돌고 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내가 유행 음악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음악이 트렌드에 맞았으면 한다”며 “단기간에 이루기 힘들겠지만, 음악 하는 사람은 그런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도 ‘고집’으로 채웠다. 아내를 생각하며 작곡한 타이틀곡 ‘쉬’는 피아노의 서정미를 살려 감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별을 노래한 ‘욕심’은 여자친구에게 “날 그만 사랑해 달라”는 얘기를 들은 친구의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절절한 느낌을 가득 담았다. 대부분의 곡을 30분 안에 작곡했고, 마음에 안 들면 수정 없이 바로 버렸다. 2015년 군 제대 이후 작업실에 매일 출퇴근하며 작곡한 곡이 정규앨범 3장까지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서 가능한 작업 방식이었다.
꼼꼼한 준비과정은 자신감을 키웠다. 이석훈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다 가사가 틀리거나 음향이 안 좋을 때마다 자책했는데, 그게 음악의 전부가 아니더라”며 “이번 앨범에서는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듀2’ 출연으로 인기를 쌓은 후 발매된 앨범이라 음원 차트 순위에도 눈길을 쏠린다. 그는 “너무 만족하는 앨범이고 믿음이 있다”면서도 “결과에만 집중하는 가수였다면 9년 동안 노래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SG워너비의 앨범도 부담 없이, 여유 있게 작업할 예정이다.
이석훈의 올해 키워드는 ‘도전’이다. 노출을 꺼리던 모습을 탈피해서 주어진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노래할 자리가 있으면 할 거고 방송을 나가게 되면 나갈 겁니다. ‘프듀 3’ 출연 제안이 들어오면 당연히 해야죠. 내내 움츠리고 살았던 저 자신을 깨볼 거에요. 그게 올해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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